영화 황진희. EBS '한국영화 특선‘ 시간에는 26일 이조시대 최고의 미모 여성 삶 그린 황진이, 한겹 안쪽에 감춰진 황진희 男 얽힌 역사의 슬픈 사랑. 1957년 첫 주연 도금봉 1987년 두 번째는 장미희, 2007년 황진희 주인공은 송혜교 [사진/ 영화 황진희 영상 스틸 컷]

[월드투데이 김유경 기자]

황진희는 16세기에 활동한 우리 나라의 이름 있는 기생이다. 그녀는 개성에서 살던 황진사의 첩의 딸로 태어났다. 호는 명월이었다.

▲ 2007년 영화 황진희의 주인공을 맡은 송혜교
황진이는 어려서부터 수려한 용모에 서예와 가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그 소문이 각지에 퍼졌고 또 많은 일화도 남겼다.

황진이가 15세 무렵에 한동네에 살던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던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대문 앞에 이르자 말뚝처림 굳어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죽은 총각의 친구가 이를 황진이에게 알이자 황진이는 소복단장을 하고 달려나가 자기의 치마를 벗어..관을 덮어 주었는데 그 제서야 상여가 움직이더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일로 인하여 그녀가 기생이 되었다고도 한다. 황진이는 첩의 딸로서 멸시를 받으며 규방에 묻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기 보다는..봉건적 윤리의 질곡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다.

그 결심을 실천하자면 당시 그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오직 길이라면 기생의 인생을 걷는 것이었다.

황진이를 거처간 남정네들

바사로 전해지는 실존 인물 황진희와 사랑을 한 당시 남성들은 첫 번째 옆집 總角(총각)이다으로 그는 상사병이 걸려서 죽으면서 황진희의 삶이 바뀌는 결과를 초례했다.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으로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황진이가 유명해지게 되는데 황진이는 송공과 그 전부터 함께 지낸 사이라고 하는 역사도 있다.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으로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가다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그 노래에 빠져 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황진이가 "개성에 이사종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그 사람인가 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아보게 하였는데 정말 이사종이었고 그래서 황진이가 찾아가 서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러 밤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종에게 "내 마땅히 당신과 6년을 살아야 겠소"라고 말하고는 이사종의 집에 3년 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가서 살고 3년 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비사를 보면 황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했으며 당당한 여자인지 알 수 있으며 이 황진희의 이시종과의 사랑은 현 시대로 보면 계약결혼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네 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으로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아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큰소리 쳤다고 황진이와 30일을 지낸 후 황진이가 송별 소양곡을 불렀는데, 그걸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황진이와 함께 며칠을 더 살았다고 한다.

다섯 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이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않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꾀를 내어 황진이 집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 말고 앞 만보고 갔다고 한다. 그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망공산 할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시조를 읊었다.

그 소리를 듣고 벽계수가 뒤돌아보다가 말에서 떨어졌고 그래서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라 풍유랑이라 말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고 현재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이다.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갈 때 이생이 먹을 것을 짊어지고 갔는데 여행도중 다 떨어져서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황진이가 몸을 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행이 끝나고 미련도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로 그는 면벽수련 30년으로 유명했는데 그래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용모가 빼어났던지 면벽수련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바로 서경덕이다.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비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

그래서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제자가 돼었고 후대 사람들은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 이 세사람을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황진이의 삶은 남성위주의 시대를 외려 휘저었고 남녀간의 사랑은 언제나 본인이 선택하고 선도했으나 헤프지 않았으며 시화에 능하고 풍류를 알아 서양 및 중국의 미녀가 단순히 미모로 권력자 에게 몸을 맡기고 이름을 날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女人이었다.

그래서 후일의 남자들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자는가? 누웠는가?"라고 그녀를 흠모하였다.

▲ 1957년 첫 황진희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도금봉 씨
본명은 황진(黃眞, 1511~1551),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그녀가 남긴 시조가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이 될 정도로 뛰어났던, 시대를 풍미한 명기(名妓)이며,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로 불리었다. 타고난 절색에 명창이었으며 시재(詩才)에도 능해 당대 최고의 명기로 앞에서 열거한 내용대로 많은 일화를 남긴 여인이다.

한편 황진희는 말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금강산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만행(萬行)하며 세상을 둘러보았으며, "나로 인하여 세상의 남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이 몸을 길가에 묻어 짐승과 벌레가 먹게 하여 타의 경계로 삼도록 하세요" 라는 유언을 남기고 명을 달리했다.

우리네 영화사에는 황진이에 대한 영화가 여러편있으나 시초작은 1966년에 제작된 황진희이다.

26일 EBS 1TV 일요일 밤 11시 ‘한국영화 특선’시간에 황진이를 방영 주목을 받고 있다.

▲ 1987년 영화 황진희에서 주연을 맡은 장미희
이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은 황진사의 딸로 재색을 겸비한 인물이다. 이런 그녀를 오랫동안 남몰래 연모해 온 갖바치가 상사병으로 자살을 하고 마는데 그가 자살한 날이 진이의 혼례 전날이어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당하고 갖바치의 비극적 삶에 충격을 받고 일개 기녀로 변신한다.

진이가 기녀로 명성을 떨칠 때 벽계수를 만나 두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나 벽계수가 명나라 사신으로 발탁돼 진이의 곁을 떠나게 되며 다른 여자의 품으로 가 버린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진이는 유랑길에 오르며 연약한 선비 이생과 만나 삶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생이 경제적으로 무능력해 진이는 몸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고, 이생은 이에 모멸감에 젖어 비굴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이생은 사당패들에게 진이를 팔아넘기려 하고 진이는 그것을 알고 스스로 사당패를 따라나선다는 다소 비사와는 다른 영화적인 재미도 구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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