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 전 부인 초연 스님 “아직도 애 아빠 사랑해요” 스님이 된 기구한 사연

[월드투데이 김복희 기자]

30일 또 절도행각으로 감옥행이 결정된 일명 대도 조세형 그의 슬픈사연 뒤에는 이젠 출가해 스님이된 아내 초연 스님 파란만장한 생이 함께 하기에 그를 국민들이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 모른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절도사건 대도 조세형 고위관리 및 부잣집만 털며 의적이라고까지 불렸던 조세형

▲ 남편 조세형 씨와 함께 방송에 출연한 당시의 초연스님 (사진=방송 캡쳐)
결혼 후 새 인생을 찾아가는 듯 했지만 결국 자리를 잡지 못 하고 몰락한 조세형 그의 전부인은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슬픈 인생사의 슬픔을 털어 놓았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조명해 보면 (어떻게 방송에 출연하게 되셨는지?)

요즘에 보면 자그마한 일에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는 부부들이 참 많잖아요?
제가 역경을 견뎌 온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나왔습니다.

(조세형씨를 어떻게 만나셨는지?)

저는 한 번 결혼의 실패가 있었는데, 그래서 남자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망향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고개를 딱 쳐들다가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 뭔가 저 분은 큰 일을 할 거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후 몇 번 만났을 때, 저를 데리고 교회를 가셨습니다. 무슨 강의을 하시나 했는데, 일생 동안 살아온 이야기 간증을 하는데 제가 살아온 인생하곤 극과 극이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연이었고. 그리고 간증을 끝내면서 '제가 청혼할 여인을 여기 데리고 왔다' 그러시는 거였어요.나이 차이도 참 많이 났어요. 23살 차이.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수건 한 장을 다 적실 정도로 울었어요. 어쩌면 저렇게도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5살 때 배가 고파서 훔친 두부가, 일생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었나 누가 애정을 가지고 돌봤으면 저러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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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5월 결혼한 후 이은경씨(초연스님)가 남편 조세형씨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이은경씨 제공>)
그 분이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좀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했는지?)

저에게도 아픔이 있잖아요?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아픔이 있었고 그래서 내 하나가 희생을 하면.. 사랑으로 감싸주면 정말로 저 분은 이 나라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밖에 없었어요.

(결혼생활은 행복했는지?)

그분은 아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부모의 사랑도 모르고 자란 사람이라서 아이만 보면 정말 사랑의 눈으로 보는.. 그런 행복한 기간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 있었어요.

(결혼생활 하시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드셨는지?)

그 분은 돈이 생기면 전부 다 선교활동에 쓰시고, 가정에는 1원도 가져오질 않았어요. 그리고 주변에, 어깨에 힘주고 '형님!' 하는 분들 치다꺼리가 너무 힘들었어요.

'큰집에서 나왔는데 목욕값 좀 주십시오' 하면 그 목욕값이 1만원이 아니고 백 단위로 줘야 하고 그리고 어린 아이에 대한 협박도 하고 그런데 또 그런 얘길 조세형씨한테 하면 불같이 화를 내니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수습하곤 했어요. 10년 세월을..

(그 뒤로 일본에서의 절도사건이 있었지요?)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그런 사고를 쳤죠. 첫 아이 돌 무렵에 그런 일이 생겼으니까 저는 지금도 기자분들을 무섭게 생각하고 피해다니는데 그때 제가 노산에다가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계속 한 달을 기자분들이 집 앞에 와서 잠복하고 있는 거예요. 조세형씨 기사를 캐기 위해서 그래서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고, 먹을 것도 없고.. 정말 배고픔을, 굶주림을 느껴 봤어요 분유가 없으니까 아이를.. 쌀을 아껴서 미음을 쑤어 먹여야 하니까 저는 거의 못 먹고.그러니까 뱃속에 아이는 자연히 유산이 되더라고요.

(심적으로 굉장히 힘드셨군요?)

예, 그 뒤로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조세형의 아내라고 세상에 저 홀로 서는 길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영적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또 사건이 났죠? 마포 치과의사 절도사건..)

제가 경고를 했었어요. 다시 한 번만 또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돌봐줄 수가 없다 그랬는데 그게 현실로 돼 버린 거죠.

(그 사건으로 그럼 이혼을 하신 거예요)

혹독하게 혼을 내주고 싶었어요. 제가 너무 어머니같이 해주다 보니까 자꾸 그러나싶어서 강한 아내로 제가 등을 돌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렇게 돌렸는데도 안 된 거죠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이혼을 하고, 출가를 했죠.

(이혼하고 나서 지금 교류는 있으세요?)

어쨌거나 아이 아빠이기 때문에 남들은 다 손가락질을 한다 할지라도 저에게는 아이 아빠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좀 세상에 부끄러운 일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혼자만 맞는 게 아니라 아이하고 저도 그 돌들을 많이 맞으면서 살았어요.

사람들이 조세형씨를 아무리 비난하고 돌을 던져도 저는 조세형씨하고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그런 커다란 일들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하고 성직자로 발길을 돌렸는데요..

아이 아빠로서 옆에 있어만 줘도 그 든든함이 아이에게는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예요. 누워있는 남편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노라 각방을 쓰는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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