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물보호단체 카라

AI 확산 방지를 위한 살처분을 거부해 논란을 일으켰던 참사랑 동물복지 농장이 27일부터 두 달 만에 계란을 출하한다.

27일 익산시는 “익산 참사랑 동물복지 농장을 3월28일 조류인플루엔자 예찰지역으로 전환했다”며 “예찰지역 전환 후 이상 징후나 의심 사례가 발생하지 않아 계란 출하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예찰지역 전환이 한 달 전인 3월28일 이뤄졌음에도 익산시는 약 3주가 지난 시점인 4월 21일에 참사랑 농장에 이를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농축산식품부의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르면, 예찰 지역으로 전환된 후 세척·소독 상태를 점검해 병원체의 오염 우려가 없을 경우에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농장주와 살처분 반대를 지지해 온 동물단체들이 예찰 지역으로 전환된 걸 모르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예찰 지역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해왔음에도 익산시는 예찰 지역 전환 사실을 참사랑 농장 쪽에 한 달 가까이 통보하지 않았다.

참사랑 농장이 제 때 통보를 받았더라면 더 빨리 달걀을 출하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만큼 경제적 손실도 줄었을 것이다.

익산시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전환 시점 당시 법원은 “살처분에 예외는 없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손을 들어주는 등 살처분 집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익산 지역에 발생했던 AI가 4월 2일에서야 진정국면에 접어들어 지난달 말 농장주가 예찰 지역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당장 달걀을 출하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AI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예찰지역으로 바뀌면 달걀 반출이 가능하지만 참사랑농장의 경우 살처분 집행을 막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려 논의가 길어졌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예찰 지역으로 전환됐지만 살처분 논란이 남아 있어 출하는 어렵다고 통보하는 게 옳은 행동이었을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은 2015년부터 동물복지 기준에 맞게 산란계 농장 기준(㎡당 9마리)보다 넓은 닭장(㎡당 5마리)에서 산란용 토종닭 5000여 마리를 풀어 키워 왔다.

지난 3월 5일 농장에서 2.1㎞ 떨어진 하림 직영 육계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고 계란 출하도 금지됐다. AI 확진 농장에서 반경 3㎞ 안에 있는 16개 농장의 닭 85만 마리는 모두 살처분됐지만 참사랑 농장주는 "건강한 닭들을 죽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농장주인 유항우(50)씨와 임희춘(49)씨 등은 "획일적인 살처분 명령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행정심판과 살처분 명령 취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지난달 이를 기각했다.

그 사이 AI 최대 잠복기간인 21일이 지났다. 유 씨 부부가 살처분 명령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닭들은 계속 알을 낳았다.

토종닭 5000여 마리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었고, 출하하지 못한 달걀이 20만개까지 쌓여가면서 익산시는 지난 20일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어 농장의 달걀 출하를 허용했다. 해당 농장에서 AI 이상 징후나 의심축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산시 지난 19일 농장의 분변·환경 시료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고 두 달간 네 차례 실시한 AI 검사에서도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농장은 27일 오후 선별과 세척 등의 준비를 거쳐 3월 28일 이후 생산된 계란 20여만개 가운데 5천여개를 한살림 로컬푸드 매장에 출하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농장주는 예찰 지역으로 전환된 3월28일 이전에 생산한 계란 9만9,000여개(약 3000만 원 어치)는 모두 폐기해야 했다. 익산시가 당초 농장에서 보관 중이던 달걀 총 21만개 가운데 살처분 명령이 떨어진 기간(3월 6일~27일)에 생산된 달걀은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남은 달걀을 폐기하지 않고 출하하게 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살처분 논란이 계속 진행 중이어서 유씨 부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시 관계자는 "계란 출하와 AI 확산 방지를 위해 실시하려는 살처분은 별개 문제"라며 살처분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방역 당국과 법원은 익산시와 같은 견해다. 농장주 부부는 지난달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전북도에 제기했지만 "아직 AI 발병 위험이 상존한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됐다.

전주지법은 "살처분이 집행될 경우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며 익산시장을 상대로 낸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를 기각했지만 농장은 항소해 살처분 여부 역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더 오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재판의 실익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살처분 명령서의 집행기한도 3월10일까지여서 이미 보름 이상이 지난 상태다.

익산시는 농장주에게 살처분에 응하라고 설득하지만 농장주는 여전히 살처분을 거부하면서 양측간 신경전은 지속될 전망이다.

익산시에 따르면 법적으로 AI발생 농가에 대한 살처분 명령 권한은 자치단체장에게 있지만 3㎞ 이내 보호지역의 살처분 결정권은 농림축산식품부 가축방역협의회에 있다.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있더라도 정부가 방역 대책을 바꾸지 않는 한 익산시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농장 측은 "방역대를 풀면서 계란은 출하가 되는데, AI에 안 걸린 닭들은 죽여야 된다는 익산시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한 달 전에 예찰지역으로 전환됐는데도 익산시가 늑장 통보를 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유씨는 "유정란은 신선도가 중요한데 3월 28일 이후 한 달이 돼 간다"며 "팔 수 있다 해도 달걀 대부분을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빵공장 등에 땡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처분 집행을 두고 익산시와 대치하면서 농장 측은 사료값과 달걀값 등 1억원이 넘는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유씨는 "경제적 손실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도 남았다. 지난달 익산시가 유씨 부부를 살처분 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그동안 쌓아뒀던 계란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어 참사랑 농장의 피해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가축전염병 발생시 살처분 정책을 고수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전진경 상임이사는 “이번 조류독감만으로 37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되었으며 2003년 조류독감 발발 이래 지금까지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방역상의 이유로 죽어간 가금류의 숫자만 8201만 마리에 달한다”며 “동물관리, 방역 수준 및 감염 여부와 무관한 무조건 살처분 명령대신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합리적 방역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장주 유 씨는 “알을 품는 동안은 먹을 것도 거르고, 병아리에게 좋은 먹이를 먼저 먹이는 게 어미닭이다. 결코 함부로 대하거나 하찮게 여겨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닭이나 돼지 등 농장동물들의 생명도 존중받는 세상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융통성 없는 행정과 법에 맞서 온 몸으로 저항했던 동물복지농장의 ‘승리’는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환경운동연합은 그간 생명 폐기처분에 반대하며 참사랑 농장을 살리기 위해 ‘생명달걀’ 모금 캠페인을 벌였으나 달걀 출하를 할 수 없었다.

지난달 13일부터 시작된 생명달걀 모금 캠페인은 국가공무원노조 등 개인과 기관 207곳으로부터 757만원을 모았다.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은 ‘참사랑 농장에 힘이 된다면 달걀을 못 받아도 좋다’ ‘무차별 살처분, 반드시 바로잡자’ ‘정의로운 항거가 이 땅의 무모한 살생을 막는 계기가 될 것이다’ 는 등의 응원 메시지를 전하며 힘을 보탰다.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은 무차별 살처분을 피해 농장을 지켜내게 해 준 생명달걀 동참 시민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희망의 달걀을 보내 줄 계획이다.

익산시는 매몰된 달걀에 대한 보상은커녕, 살처분 명령을 취소하거나 고소를 취하하지도 않고 있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예방적 살처분 구역 안에 위치한 농장에서 살처분을 안 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들은 ‘생명달걀 캠페인’을 벌이며 농장주와 함께 비과학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했다. 공장식 축산의 폐기, 지속가능한 복지축산의 필요성을 알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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