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법원

남편이 전 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동거한 사실혼 관계는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군인연금법상 유족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국현)는 숨진 군인 손 모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박 모씨가 "유족 연금 지급이 불가한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던 손 씨는 1954년 신 모 씨와 결혼해 혼인신고를 마쳤다. 손 씨는 자녀를 3명 둔 상태에서 박 씨를 만나 새 살림을 차렸다. 손 씨는 박 씨와 자녀 2명을 낳았다.

손 씨는 박 씨와 동거하면서 여러 번 신 씨를 찾아가 이혼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신 씨는 이혼을 완강히 거절했다. 손씨는 1977년 전역한 후 2014년 사망했고, 박 씨는 국방부에 유족연금을 달라고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박 씨는 직접 소송을 냈다.

박 씨는 법정에서 자신과 손 씨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실혼 관계였으므로 국방부가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손 씨와 신 씨는 사실상 이혼 상태였다"며 법이 보호할 대상은 신 씨가 아닌 자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률혼주의 및 중혼금지 원칙을 대전제로 하는 게 우리 가족법 체계"라며 "예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실혼이 법률혼을 손쉽게 사실상 이혼 상태로 만들어 우월한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전제했다.

군인연금법이 정한 '사망 후 유족에게 연금 지급' 규정에서 유족의 범위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사람'을 포함한 것을 두고, 재판부는 "법률혼이 깨지지 않았다면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실혼 관계자를 유족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예외적 상황이란 법률혼 부부가 이혼에 대한 의사 합치가 있었음에도 형식상의 절차 미비로 법률혼 관계가 남아 있는 경우다.

그러면서 "박 씨는 손 씨의 법적 아내와 이혼 문제를 논의했으나 거절 의사로 이혼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박 씨와 손 씨와의 관계는 법률혼 관계와 경합해 보호받을 수 없는 중혼적 사실혼 관계에 해당하므로, 사실상 혼인관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사실상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상 배우자가 유족으로서 연금수급권을 가지기 때문에 박 씨는 군인연금법에서 정한 유족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며 “유족연금 지급을 불가한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군인연금법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를 유족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한 것은 단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단 이유로 법률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배우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따로 법률혼 배우자가 있는 사실상의 동거 관계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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