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보는 시대별 한국대중음악사2-한국음반산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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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보는 시대별 한국대중음악사2-한국음반산업협회
  • 김경민 기자
  • 승인 2017.08.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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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의 발전기(1950~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역사적 출발을 알린 해방이전의 대중음악사를 정리한 지난 1편에 이어 한국대중음악의 발전을 이끈 1950년부터 80년대까지의 대중음악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950년대는 6.25 한국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연예인들은 군예대에 편성, ‘군번 없는 용사’가 되어 전쟁터를 함께 누볐다. 국방부 정훈국 직속 문예중대가 조직되었는데 제1소대는 ‘신협’으로 순구극단이었고 제2소대는 ‘가협’이라 칭해 일선위문, 전후방 공연활동을 펼쳤다. 임시수도 부산과 대구에서는 쇼나 악극공연이 활발했고 도미도, 미도파, 오리엔트, 스타 등 음반사를 통해 음반이 꾸준히 제작되었다.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전우야 잘자라(현인)’을 비롯해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가 ‘꿈에 본 내고향(한정무)’, ‘경상도아가씨(박재홍)’, 그리고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등이 등장했다.

1950년대-1

1953년, 휴전 이후 대중음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갔다. 서구문화가 본격 상륙하면서 ‘춤바람열품’과 함께 맘보 등 경쾌한 리듬의 다양한 곡들이 등장했고 전통가요의 현대화가 가속화 되었다. 1957년 레코드가 SP에서 LP(Long Playing microgrove record)로 대체되고 기기도 축음기에서 전축으로 바뀌는 등 일대 현식을 몰고왔다. 전쟁이 상흔이 아물면서 미8군 쇼가수들의 일반무대 활동이 두드러졌고 영화주제가 전성시대도 펼쳐진다. 레코드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59년에는 본격적인 상업방송 부산MBC가 개국한다.

1950년대-2

4.19로 시작되어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60년대 가요계의 가장 큰 변화는 ‘소리의 혁명’이다. 1963년부터 LP가 10인치 크기에서 앞 뒤 여섯곡 씩 담을 수 있는 12인치 크기로 제작되었고, 64년부터는 스테레오 음반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오디오 또한 급성장 추세에 따라 대중음악 역시 일렉트릭 사운드가 도입되며 남녀 중창단, 그룹사운드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것도 60년대 소리 변화의 상징이다.

5.16 이후 각종 가요단체들이 한국연예협회로 통합되었고, 67년 1월 한국예술윤리위원회가 발족하며 모든 음반은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다.

61년 ‘노란 샤쓰의 사나이(한명숙)’의 히트를 계기로 장르가 더욱 다양해짐과 동시에 번안가요 붐과 함께 한명숙, 최희준, 현미, 패티김 등 ‘미8군 쇼가수’들이 대거 가요계로 진입해 한 축을 담당했다. 64년 ‘동백아가씨(이미자)’ 빅히트에 맞물려 가요계의 주 흐름이 다시 트로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고 64년 그룹사운드의 효시를 이루는 ‘키보이스’, ‘에드포’가 첫 독집음반을 발표, 이후 그룹사운드 전성시대를 견인했다. 또한 이른바 ‘세시봉’ 세대가 등장해 통기타시대를 예고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스타들이 60년대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1960년대

1970년대는 청년문화의 시대였다.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는 60년대 말 ‘트윈폴리오’의 성공으로 예견된 통기타 가수들의 대거 등장과 가요계의 주도권이 청소년층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시작됐다. 70년대 포크열풍의 첫 히트곡은 ‘라나에로스포’가 발표한 ‘사랑해’였다. 이어 어니언스의 '편지‘ 김정호의 ’하얀나비‘, 송창식의 ’왜 불러‘,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등으로 이어지며 포크가수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70년대 초, 군에서 제대한 남진과 나훈아의 빅 라이벌이 잠시 트로트의 재건을 시도했으나 대중가요에 리듬 앤 블루스를 접목한 펄시스터즈와 김추자의 ’임아‘, ’임은 먼 곳에‘ 등에 주춤하였다.

1970년대

70년대의 자유분방한 청년문화는 당시 유신정치와 긴급조치 등 정치상황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고 필연적인 규제를 받게 된다. 이른바 대중문화계 전반이 무너진 ‘대마초 파동’과 공연윤리위원회의 대중가요 대량금지 사태로 이어졌다. 그 공백을 그룹사운드 가수들과 신인들이 채웠으며 이어 77년 MBC가 시작한 대학가요제는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신인가요제 등 또다른 청년문화를 낳게 된다.

1980년대-1

1980년대의 화두는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로 시작된다. 공전의 히트와 함께 조용필은 80년대 최고의 가수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80년은 방송통폐합 등 사회적 요건에 의해 가요계는 불황에 빠져들었다. 이때 음반계는 살아남기 위해 덤핑음반을 출시하게 된다. 이른바 ‘메들리 음반’의 출현이다.

1980년대-2

강변가요제의 스타 이선희가 ‘J에게’로 전영록이 ‘종이학’으로 이른바 아이돌의 시대를 열어갈 때 이문세의 등장은 가요계의 새로운 질서, 발라드의 시작을 의미한다. 트로트와 발라드가 전면에 나설 때, 백두산, 다섯 손가락, 부활, 들국화, 시나위, 산울림, 송골매 등 그룹사운드와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등 댄스가수들이 공존하며 음반계의 호황을 이끌어간다. 이문세로 시작된 발라드의 정착은 변진섭과 유재하로 완성된다.

김경민 기자    sib8ki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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