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재벌 개혁론자로 꼽히는 이동걸 교수가 차기 산은 회장에 내정되면서 국내 최대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의 역할에도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위원회는 7일 이동걸 동국대 석좌교수를 차기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 제청한다고 밝혔다. 이 내정자는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조만간 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변 인사 중 대표적 재벌 개혁론자로 꼽히는 이동걸 교수가 차기 산은 회장에 내정되면서 국내 최대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의 역할에도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문 정부가 정책금융 지원체계 개편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조선 석유화학 등 기간 산업 및 관련 대기업의 자금줄 노릇을 해온 산은으로선 새로운 위상 정립이 불가피한 시점이어서 개혁 성향의 새 수장 임명은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동걸 내정자는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금융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진보 성향의 금융 경제학자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 참여해 가계부채 등 금융 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 개혁론자이자 대통령의 측근인 이 내정자가 산은 회장에 취임하면서 보수적 성향의 산은 조직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내정자는 대통령의 주변 인사 중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로 꼽힌다. 과거 정부에서 언론 인터뷰와 칼럼 등을 통해 줄곧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개혁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는 지난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으로 벤처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고 일자리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 내정자가 지난 정부의 정책금융을 통한 부실 대기업 지원도 강하게 비판했던 것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그는 2015년 자신의 블로그에 "부실 대기업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으로 왜곡·은폐·지연시키면서 눈덩이처럼 커졌고 이제 '한국적' 양적완화라는 '창조적' 방법으로 그 진상을 숨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야당은) 구조조정을 더 이상 박근혜 정부에 맡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속히, 투명하게 그리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처리하라"며 "그리고 새로운 산업정책의 방향, 새로운 경제 진로를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과거 발언으로 볼 때 이 내정자가 산은 회장직에 오를 경우 기존의 정책금융 지원체계에 메스를 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부실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과감하게 끊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늘리는 쪽으로 전환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금호타이어와 대우건설 매각, 대우조선해양 회생 등에도 산은의 목소리에 크게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금융기관 기능조정에도 이 내정자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정부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생산적 금융' 구상에 따라 정책금융기관의 조직과 기능을 전면 재조정할 계획이다. 산은의 경우 신산업 육성과 성장·재도전금융을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 선도 금융기관'으로 키운다는 계획이어서 이 내정자의 평소 소신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의 속성상 보수적일수 밖에 없는 산은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진보적 성향의 이 내정자가 너무 과격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경우 정부와의 협력체계나 조직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산은 노조는 최근 이 내정자가 친(親)정권 인사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기도 했다.

산은 노조는 차기 산은 회장 내정설이 돌던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전형적인 낙하산 보은인사로, 보수정권의 낙하산 놀이를 현 정권도 되풀이하고 있다"며  "역대 정권은 산은을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매번 전문성과 거리가 먼 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차기 수장 선정에서 진정성과 책임감을 갖길 바랐으나 청와대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대선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를 내정하면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산은 노조는 과거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임명될 경우 출근저지 투쟁에 나선 전례도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이 내정자의 임명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취임 전 노조와 상견례 등의 자리가 있는 만큼 후임 회장으로 적격 인물인지 판단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성명은 낙하산 인사에 대해 반대한 것"이라며 "직원들과의 대화를 등을 통해 이 내정자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겠지만 아직 임명 자체를 노조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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