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고건 회고록 출간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자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 간의 불화설에 대해 “(탄핵소추에서 복귀) 사흘 후 새 장관들에 대해 임명제청을 해달라고 해서 거절해서 완전히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고건 회고록-공인의 길'을 펴낸 고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실패한 인사라 표현한 데 대해 "내가 물러난 지 2년 후 노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을 때는 노 대통령 본인이 고립됐던 건 사실인가보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고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달 30일 광화문 시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고록을 공개하면서 "(노 대통령의 고건 임명 실패 발언은)완전히 사실과 다르다. 여야를 아울러서 국정을 수행한 건 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전 총리가 청와대를 떠난 지난 2006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고 전 총리에 대해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된,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라고 발언했다. 고 전 총리는 이듬해 17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고 전 총리는 당시 노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해 "내가 총리일 때 여야정 협의가 잘됐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 제3당인 신4당 체제 하에서 여야정협의체로 매월 두번 국정협의체를 가동했다. 여기서 이라크 파병, 한·칠레 FTA 협의도 다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금도 (새 정부가 여소야대로) 어려운 시점에서 여야정협의체는 간절히 필요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정 협의체를 빨리 만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3월 12일부터 2004년 5월 14일까지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기간을 '내 인생 가장 길었던 63일'이라고 표현했다.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에서 복귀한 날 청와대로 들어가 '이제 강을 건넜으니 말(馬)을 바꾸십시오'라고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사흘 후 새 장관들에 대해 임명제청을 해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비서실장을 두세번 보냈고, 마지막에는 내 사표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완전히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어긋난 배경을 설명했다.

고 전 총리는 참여정부 총리 재직 시절, 정치인들이 노 전 대통령과의 불화설을 제기할 때마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다'고 에둘러 설명하고,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언행을 문제삼아 경질을 검토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에 역대 정권 평가를 기록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오만·불통·무능'이라 표현했다. 그는 "(대통령을) 하시지 말았어야 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그 당사자(박 전 대통령)가 제일 큰 책임이 있겠지만 그 사람을 뽑고 추동하면서 진영 대결에 앞장 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면서 "검증 안 하고 대통령 후보로 뽑은 거 아니냐. 보수진영이 이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진영대결의 논리이고 결과"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30일 당시 박 대통령 초청으로 사회원로 몇 명과 함께 청와대에서 진언을 할 기회가 있었다"면서 "박 대통령에게 성역없는 수사를 표명하고, 국정시스템을 혁신해서 새로운 국정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탄핵 사태까지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고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 국정운영 평가에 대한 질문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면서 "현실 정치를 떠난 지 십수년 지난 저로서는 현안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고 전 총리는 그러면서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이 조사해서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겠지만 적폐 청산이 특정 세력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그 기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특권과 반칙 없는 공정사회로 가기 위한 국정운영 시스템 혁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년 추진될 개헌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국민들은 70년 넘게 대통령제를 학습해왔다. 남북대립관계가 심각한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니 이원집정부제니 해서 새로이 학습을 시작해 새 집을 지으려면 집 짓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면서 "대통령제를 수선해서 쓰되 대통령의 행정 부처 인사권한을 총리와 장관에게 이양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고 전 총리는 2007년 17대 대선 불출마 이후 현실 정치 불참여 원칙을 고수하며 외부 활동을 삼가해왔다. 그는 이날 출판 간담회가 자신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전 총리는 "사인(私人)으로 지내던 중 2015년 메르스가 터졌을 때 2003년 총리 시절의 성공적인 사스 방역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문의가 쇄도했고,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정 대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면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한다. 지난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재 시각에서 음미할 때 살아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책으로 새롭게 담게 됐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의 팔순 자서전이기도 한 이 책은 과거 저술자료에 현직 언론인과의 현안 대담을 추가해 만들어졌다. 고 전 총리의 주민등록상 나이는 1938년 1월 2일생이지만 출생 신고가 한달 늦게 됐다고 한다. 양장본, 584쪽, 나남, 3만4000원.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