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도주한 범죄자들이 검거돼 한국으로 압송되는 피의자들의 기내 모습. 사진제공=경찰청

국내서 범죄를 저지른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피의자 47명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세기로 한꺼번에 압송됐다.

 경찰청은 국내에서 사기·마약·폭력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범죄자 47명을 집단 송환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송환대상 범죄자는 전화금융사기범(보이스피싱) 28명 등 사기사범 39명을 비롯해 마약사범 1명, 폭력사범 1명, 절도사범 1명 등이다.

필리핀 현지 한국인 관련 사건처리를 위해 파견된 경찰청 소속 코리안데스크가 현지 사법기관과 공조해 검거한 전화금융사기단 21명도 압송대상에 포함됐다. 사기범들의 범죄 피해액만 총 460억원에 달한다.
 
압송자 명단에는 최상위 수배등급인 인터폴 적색수배자 11명도 있었다. 가장 오랜 기간 필리핀에 체류한 피의자는 1997년 11월 필리핀 현지로 도피한 폭력사범으로 약 19년 만에 국내로 송환돼 처벌을 받게 됐다.

필리핀 이민청은 송환 당일 수사관 120명과 호송차량 20대를 동원, 마닐라 국제공항까지 피의자들을 호송했으며 전용 출국 심사대를 거쳐 우리나라 국적기로 신병을 인계했다.  

국적기인 호송기는 우리나라 영토에 해당하므로 경찰은 탑승 직후 피의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으며 이날 오후 4시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전세기에는 민간인 승객 없이 경찰 등 호송인력 80여명만 함께 탑승해 기내 소동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도착 후 피의자 47명은 사전에 준비된 입국심사 절차를 거쳐 오후 5시10분께 F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압송된 피의자 모두 신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고 일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일반인들의 접촉을 못하도록 질서유지선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공항에 배치된 경찰특공대의 경계하에 직원전용 출입로를 통해 빠져나온 뒤 귀빈주차장에 미리 대기해 있던 호송차량에 신속히 탑승했다. 이어 이날 저녁 전국 각지에서 동원된 호송관들에 의해 본인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관서로 신병이 넘겨졌다.

 필리핀은 한국과 가깝고 상대적으로 치안사정이 열악해 많은 한국인 범죄자들이 도피하거나 국제범죄의 근거지로 삼는 국가 중 하나다.

올해 11월 말 기준 국내 사범 144명이 필리핀으로 도피할 만큼 전 세계에서 한국인 범죄자가 가장 많이 도피한 국가로 꼽힌다. 필리핀에서 검거되는 한국인 범죄자 역시 꾸준히 증가해 올해 11월 말 기준 외국인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인이 90여명에 육박한다.

필리핀에 거점을 둔 전화금융사기나 사이버도박 등 국제범죄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경찰청은 필리핀 법무부·이민청 등 현지 사법기관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부와 주필리핀한국대사관, 인천공항공사 등 유관기관의 협조를 통해 집단 송환을 추진하게 됐다.

경찰청은 "그간 필리핀으로 도주한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현지에 본거지를 둔 조직적 범죄를 소탕하고자 필리핀 경찰청과 이민청 등 현지 사법기관과 지속적인 국제공조수사를 전개해왔다"며 "이들을 한국 법정에 세움으로써 형사사법정의 실현은 물론 필리핀 교민사회 안정이 필요했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임병호 경찰청 외사수사과장은 "이번 송환은 경찰청의 국경을 초월한 국제공조수사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도 경찰청은 외국 경찰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범죄자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반드시 검거돼 처벌받는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사법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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