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책 선정

'경애의 마음' 표지 [사진=창비]

[월드투데이=강효진 기자]김금희 소설가의 '경애의 마음'이 '매일경제와 교보문고가 선정한 올해의 책 50권', '중앙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8권' 대열에 올랐다. '경애의 마음'은 과거 같은 사건으로 인한 슬픔을 공유한 경애와 상수가 우연히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과 주고받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재난은 이후의 삶이 더 재난 같다. 이십여 년 전 인천 하늘이 잿빛 연기로 뒤덮였던 날, 경애는 사랑하는 친구 E를 잃었고 상수는 은총을 잃었다. 이후 교실에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유령이 되기를 자처하고,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얼굴에 붕대를 친친 감고 실컷 눈물을 흘리는 삶을 그들은 살았다.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말을 누군가는 녹음하고 누군가는 들었다. 스쳐 지나간 적도 많았지만 서로를 채 인식하지는 못했다. 경애와 상수는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의 와타나베와 나오코처럼, 같은 상실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후의 시간들을 버텨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들은 같은 회사에서 다시 만났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익명으로 얽혀 있었던 것까지 포함하면 그들은 세 번이나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상수는 페이스북에서 연애상담 페이지를 팔 년째 운영하고 있었는데, 상처받은 여자들을 위로하는 ‘같은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소한 거짓말이 불가피했다. 경애는 ‘프랑켄슈타인프리징’이라는 긴 닉네임으로 사연을 보내오는 여자였다. 그 사연은 모두 대학 선배 산주와의 절절한 이별과 훗날의 어설픈 재회 이야기였다. 사랑을 대하는 경애의 마음은 ‘경애답게’ 그저 솔직하고 거짓 없다.

경애는 회사에서 정리 해고에 의한 큰 파업이 있었을 때 머리까지 밀고 투쟁하다가 노조원들 사이에서의 성희롱을 고발하여 파업이 수포로 돌아가게 한 장본인이었다. 파업이 끝난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경애만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데,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애는 뚜렷하게 소외를 당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나가서도 경애는 호찌민 지사 직원들이 반도미싱의 물건을 팔지 않는 일을 문제 삼았다가 결국 부당한 발령을 받는다. 수년 전의 그 파업 때처럼, 진실을 말하기를 거부하지 않은 자의 최후는 철저한 외면과 고독 속에 살아질 뿐이었다.

경애와 상수는 느리고 자주 멈춰서고 오래 머뭇거리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랑의, 애도의, 위로하는 마음의 ‘죄 없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이미 종결되었다고 하여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그 거짓 없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미성년자가 호프집에 출입했다고 하여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며, 여자인 척을 했다고 하여 그렇게라도 진심이 가닿게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는 결코 죄가 없음을 그들은 서로의 존재로부터 위로받는다. 그리고 지금껏 비로소 마음에 묻어두었던, ‘그 어른’의 ‘죄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시절의 기억을 마침내 공유한다.

사람의 마음은 재난과 같아서 만들어낼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이라고 회고하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러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밀물처럼 밀려온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이 마음이기에, 죄를 따져 묻거나 선고를 내릴 수도 없다. 인간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성일 것 같지만 의외로 감정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돌아보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가버리는 일이 꽤나 자주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먼 과거였든 아니면 지금이든, 우리의 시대는 어쩌면 언제나 ‘상실의 시대’였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내가 있었던 자리를 잃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상실되지 않는 것을 찾아 붙들고 살아간다. 그 몇 없는 ‘폐기되지 않는 것’들 중 하나가 마음이다. 풍경처럼 그 자리에 있어서, 그 때 ―그 마음을 품었던―가 그리울 때면 잠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니까. 한결같기가 가장 어려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그리하여 익숙함에 안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우리가 한때 가졌던, 지나간 마음들에 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