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외교장관회담을 마친후 기념촬영에서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정부, 日 화이트리스트 배제 후 파기 카드 연일 시사
日 압박보다는 美 중재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 성격
3년간 정보 공유 48건…'효용성 크지 않다' 지적도

지소미아 파기가 일본이 정말 두려워 하는 카드일까?

외교와 군사 전문가들은 지소미아의 파기가 일본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효과가 크지 않고, 실제로 이 협정을 파기할 경우 우리가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대응 카드로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소미아와 관련된 부분은 일단 연장하는 것으로 정부에서 검토를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우리와 신뢰가 결여됐고, 안보 문제로 수출규제나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이 연계가 돼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 이후 우리 정부는 이전보다 강하게 지소미아의 파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앞으로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11월 체결된 지소미아는 한국이 정부 수립 이후 일본과 최초로 맺은 군사 관련 협정이다. 양국이 공유한 군사적 정보를 비밀로 보호해 3국에 넘기지 않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를 체결하면 일본과 군사 정보를 '직거래'할 수 있어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본이 보유한 정찰위성과 조기경보기 등 다양한 정찰자산을 활용하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정보 사각지대가 줄어든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의 필요보다는 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협정이라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체제를 공고히 하려 했던 미국이 한일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양국 군사 동맹을 강화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6월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을 비밀리에 추진하다가 이 사실이 공개되고 강한 역풍에 직면하자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4년만에 이 협정을 체결하게 된 것은 한일 관계를 봉합하길 원하는 미국의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 간의 위안부 합의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둘러 추진된 측면이 있다.

지소미아는 양국이 해마다 기한 90일 전에 폐기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상대국에 폐기 의사를 통보하는 만기일은 오는 24일이다.

당초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지소미아 유지'였다. 하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배제한 이후 정치권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지소미아의 파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이 안보 문제를 이유로 우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만큼 일본을 군사 동맹국으로 간주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다.

일본에서 제공받는 군사 정보가 우리 안보에 큰 실익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방부와 합참에 확인해본 결과 협정 체결 후 우리 안보에 결정적 이익이 되거나 긴요한 정보가 일본으로부터 제공된 적은 없다"며 "오히려 일본이 한국 정보를 더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인접해 있는 우리 정보자산이 먼저 탐지하게 돼 있다. 한반도 유사시 우리 정보는 일본이 위험한 걸 알리는 조기경보 역할을 한다"며 "반면 일본이 제공하는 정보는 이미 우리 영공을 지나갔거나 먼 태평양으로 비행하는 미사일의 궤적과 탄착 위치 등이다. 우리에게는 그리 결정적 정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소미아가 일본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아 압박 카드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일 양국이 지난 3년간 공유한 군사 정보는 각각 24건씩 48건에 불과하고, 중요한 정보가 오간 적도 별로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지소미아 카드는 미국의 움직임을 유도하려는 측면이 크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미일 동맹 체제가 흔들리지 않길 원하는 미국이 지소미아를 유지하기 위해 한일 무역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일 간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지소미아의 유지 여부는 충분히 검토할 수 있고, 이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실제로 파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소미아가 폐기된다고 해서 일본이 더 좋고 나쁜 것은 없다"며 "일본과 한국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흐트러지면 아시아 동쪽 지역에서 미국이 만들어 놓은 전략적 구도가 흐트러지게 되기 때문에 미국이 지소미아의 해체를 우려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이 상황을 우려해 일본을 압박하게 된다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만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 측면에서 지소미아를 생각해야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카드로 보면 안된다. (파기의) 시기와 타이밍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소미아는 필요하다고 본다"며 "(지소미아 파기는) 미국을 압박한다는 차원에서 용납할 수 있지만 실제로 (파기)하게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우리가 깬다고 하면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은 한미일 협력을 하기 싫어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불만을 가질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가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우리 의도대로 미국이 한일 관계에 개입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이 우리나라와 안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만큼,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제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남 교수는 "현 상황에서 이(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한일 관계에 미국이 개입해서 우리에게 크게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우리는 (한국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워싱턴의 주류는 여전히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사고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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