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조만간 천지가 진초록들로 물들기 전 여린 새순들을 따라 한 박자 쉬어가기로 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되고 딱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저 조용히 쉬기 위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여 찾은 곳은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경부고속국도를 타고 가다 청원·상주고속국도로 진입한 후 38㎞ 정도가면 속리산나들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나온 후 25번 국도 보은방면으로 좌회전하여 500m 정도 가면 장내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505번 지방도 속리산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12㎞ 정도 가면 상판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법주사 방면으로 3㎞ 정도를 들어가면 천혜의 자연경관과 유서 깊은 법주사가 있는 웅대한 산세의 속리산국립공원을 만나게 된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법주사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지4호), 문장대,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로 대표된다. 법주사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사이에 뻗어 있는 속리산은 소맥산맥 줄기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소백산맥은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서, 태백산(1,540m), 소백산(1,421m), 두솔봉(1,314m), 속리산(1,057m)까지는 북동-남서 방향의 높은 산지로 연속되나, 속리산 부근에서는 점차 낮아져서 추풍령(508m)에 이르러 가장 낮은 지역을 형성하고, 여기서부터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민주지산(1,242m), 가야산(1,430m), 백운산(1,218m)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지가 다시 뻗어나간다.

속리산국립공원은 최고봉인 천왕봉(1058.4m)을 중심으로 비로봉(1,054m), 길상봉, 관음봉(982m), 수정봉, 보현봉, 문수봉, 두루봉, 묘봉 등 9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있어 신라시대 이전에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다., 그 사이로 문장대(1,033m),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의 기암괴석과 암릉이 울창한 삼림과 어우러져 빼어난 풍취를 자아낸다. 그래서 속리산은 설악산, 월출산, 계룡산 등과 함께 남한을 대표하는 암산 중 하나로 손꼽는다.

속리산은 한국팔경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기봉(奇峰)과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고, 산중에는 천년 고찰의 법주사가 있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계절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백미는 역시 화강암이 만든 다양한 크기의 기암괴석들이다. 이들 기암괴석들은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덕유산을 지나온 육산 또는 토산의 백두대간 산줄기가 속리산에 이르러 석산으로 얼굴을 바꿔 솟구쳐 오른 것이다.

◆속리(俗離)의 유래와 자연환경

속리산은 처음에는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관음봉, 수정봉, 보현봉, 문수봉, 묘봉 등 9개의 연속된 봉우리가 활처럼 휘어진 형상이라 하여 구봉산(九峯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팔경의 하나로 그 절경이 금강산과 맞먹을 만큼 뛰어나 소금강산(小金剛山)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했으며, 이밖에 광명산(光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지명산(智明山), 자하산(紫霞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가 신라시대부터 속리산이라 불렸다.

속리산의 유래를 살펴보면, 784년(신라 선덕여왕 5년)에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俗離)'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속리를 단순히 속세를 떠난다는 뜻으로 풀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 속세를 떠난다는 표현은 '이속(離俗)'이 더 옳은 표현이다. 속리를 우리 음으로 유추하면 '수리(首)'가 되는데, 여기서 수리는 꼭대기를 의미하는 옛말이다. 아마도 속리라는 지명은 우리음을 한자식으로 음역하다 보니 생겨난 이름인 것 같다.

신랑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시가 유명하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국보55호 법주사 팔상전

속리산국립공원은 3개의 서로 다른 지역이 합쳐진 국립공원이다. 속리산 일대 60㎢가 1970년 3월 24일에 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이듬해 11월 속리산 주변지역 45㎢가 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그 후 10여 년 뒤인 1984년, 도립공원이던 화양동구곡(華陽洞九曲)과 선유동구곡(仙遊洞九曲), 쌍곡구곡(雙谷九曲) 지역 등이 편입되면서 현재의 283㎢라는 광대한 면적을 지닌 국립공원이 되었다. 이만큼 광대한 면적을 가진 국립공원은 국내에서 몇 개 되지 않는다.

사천왕석등

속리산국립공원은 성격에 따라 핵심 자연자원이 밀집한 자연보존지구, 다소 자연자원 밀도가 낮은 자연환경지구, 그 외 취락지구, 집단시설지구 등으로 나뉜다. 특히, 속리산, 화양구곡, 쌍곡구곡 등의 3개 지역은 각각 독립된 자연보존지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지역은 동서횡단 도로로 나뉘어져 있다.

국보 64호 석련지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충북 보은군, 괴산군, 그리고 경북 상주군으로 구분되는데, 속리산지역은 주로 보은군에, 그리고 화양동구곡과 선유동구곡, 그리고 쌍곡구곡은 괴산군에 속해 있다. 속리산 하면 보은군의 산으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는 속리산구역과 법주사의 유명세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있으며 주봉인 천왕봉이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에 위치하고, 절경을 이룬 문장대 역시 화북면 장암리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상주 시민들은 속리산은 우리 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속리산은 8이란 숫자와 인연이 깊은데, 산의 이름이 여덟 개이고, 8석문, 8대, 8봉이 있기 때문이다. 8개 봉우리에는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 보현봉(普賢峰), 관음봉(觀音峰), 묘봉(妙峰), 수정봉(水晶峰) 등이 있다.

보물 216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8대(臺)는 문장대(文藏臺), 경업대(慶業臺), 배석대(拜石臺), 학소대(鶴巢臺), 은선대(隱仙臺), 봉황대(鳳凰臺), 산호대(珊瑚臺)를 말하며, 내(內)석문, 외(外)석문, 상환(上歡)석문, 상고(上庫)석문, 상고외(上庫外)석문, 비로(毘盧)석문, 금강(金剛)석문, 추래(墜來)석문 등 8개 석문이 있다. 이밖에 수정교, 태평교 등 8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다. 이렇듯 여러 많은 봉우리와 대와 석문을 가진 속리산은 한마디로 오묘함에서 으뜸가는 산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산지이다.

속리산이 이렇게 뛰어난 경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여 변성퇴적암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즉,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서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을 이룬 것이다. 속리산의 화강암 기봉(奇峰)과 산 전체를 뒤덮은 울창한 산림은 산중에 있는 법주사(法住寺)와 잘 조화되어 승경(勝景)을 이룬다.

특히,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문장대에 서면 산 절경이 한눈에 펼쳐지며,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느낌이 절로 들게 한다. 이밖에도 8대와 8석문의 비경과 은폭동계곡(隱瀑洞溪谷), 용유동계곡(龍遊洞溪谷), 쌍룡폭포(雙龍瀑布), 오송폭포(五松瀑布), 용화온천 등 심산유곡과 울창한 수림을 이룬다.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은 한강, 금강, 낙동강의 경계를 가르기 때문에 삼파수(三派水)로도 유명하며,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져 삼파맥의 지점이기도 하다.

국보 5호 쌍사자석등

속리산 법주사에는 팔상전(국보 제55호)과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등 국보·보물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가 있고, 사찰 내에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까막딱따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627종의 식물과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속에는 복천암, 산환암, 성불사 등 크고 작은 암자 8개가 산재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지각변동의 산물, 속리산

속리산의 기반암은 고생대의 변성퇴적암류, 중생대의 화성암류, 신생대의 고기하성층과 충적층이 분포한다. 고생대의 변성퇴적암류는 옥천층군의 황강리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쌍곡구곡 입구와 군자산 일대, 소금강 일대에 널리 분포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

중생대 화성암류는 반상화강암, 흑운모화강암, 장석반암, 석영반암, 그리고 각종 암맥류로 구성된다. 반상화강암은 속리산국립공원의 중북부지역인 칠보산, 제수리치, 낙영산, 화양계곡의 파천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구성광물은 석영, 정장석, 사장석, 흑운모, 각섬석 등으로 이루어지며, 조립질 조직으로 비교적 풍화에 약해 신선한 암석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흑운모화강암은 속리산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데, 주로 문수봉, 관음봉, 세심정, 상환암, 묘봉, 문장대, 신선대, 입석대, 법주사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주 구성광물은 정장석, 석영, 사장석, 흑운모 등을 포함한다. 장석반암은 서원계곡, 구명리, 만수동계곡, 법주사계곡에 넓게 분포한다. 만수동계곡에 분포하는 담홍색의 장석반암에는 암회색의 포획암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석영반암은 속리산야영장 부근 및 화북면 상오리 일대에 주로 분포하며, 회백색을 띠고 매우 단단하며 치밀한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는 백악기 중기 이후(1억-7000만 년 전)에 일어난 불국사변동에 의하여 경상퇴적분지와 옥천습곡대 주변 지역에 소규모의 불국사화강암이 관입되었다. 화강암은 대규모 지각변동에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고온의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올라오다가 냉각·고화되어 형성된 암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강암이 관입된 이후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지반이 융기함과 동시에 기반암이 지표에 노출되면 침식과 풍화를 쉽게 받아 차츰 깎여나가면서 오늘날의 기암괴석들을 만들어 낸다.

한반도에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지질구조선인 소백산맥은 속리산의 화강암체를 지표로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소백산맥의 형성으로 지반이 융기하게 되자 하천의 침식력이 활발해져 피복 물질들이 보다 빠르게 깎여나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화강암체의 육상 출현을 앞당겼다.

속리산에서 북으로 뻗어나간 지산(枝山)에 속하는 백화산, 칠보산, 대야산 등의 화강암들 또한 이와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이를 총칭하여 속리산화강암이라 한다. 북동쪽으로 더 멀리 주흘산, 조령산, 월악산, 제비봉, 금수산으로 이루어진 월악산군(월악산화강암)도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화강암체로 속리산군과 연결되어 있다.

◆속리산 주능선 상의 주요 암봉들

속리산 주능선 상의 암봉들은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관음봉, 두루봉, 묘봉 등이 활처럼 연이어져 있고, 기암괴석과 울창한 삼림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취를 자아낸다. 속리산은 '바위들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산의 능선을 따라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소재하여 있다. 속리산은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산(花山)으로 통한다. 이는 꽃 같은 돌들이 불타는 듯한 모습으로 산 전체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주 능선상의 기암괴석과 암봉들을 한꺼번에 감상해 볼 수 있는 곳이 수정봉이다. 수정봉은 법주사 서쪽에 위치한 산지로 해발고도 565m에 지나지 않지만 속리산 8봉의 하나에 드는 명산이다. 우선 산세로 보면 수정봉은 속리산의 중심으로 속리산의 서북릉인 관음봉과 묘봉 사이에서 능선이 이어지다 솟구쳐 오른 봉우리로 속리산의 주능선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수정봉 정상에 올라서면 서북쪽 묘봉에서 남쪽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속리산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지에는 다양한 규모의 토어와 판상절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산 정상 부근은 인셀베르그(inselberg) 형태의 화강암 돔을 이루고 있다.

천왕봉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은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펑퍼짐한 육산의 형태를 띤다. 천왕봉 일대의 화강암은 주변 암석에 비해 절리의 발달이 탁월하고 화학적인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 침식과 삭박이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두꺼운 토양층이 암석을 덮어 비교적 평평한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천왕봉은 한반도 남반부의 대동맥을 이루는 한강, 금강, 낙동강의 3대강 물길을 나누는 삼파수(三波水)의 중심에 있는 분수령 같은 봉우리이다. 또한 남한지역의 백두대간 산줄기의 중심에 위치하며, 천왕봉을 꼭짓점으로 하여 남한 땅의 모든 산들이 뻗어나가고 또 이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비로봉은 천왕봉 방향 250m 거리에 있는 해발고도 973m의 암봉으로 세봉우리가 한데 어울려 솟아 있으며, 봉우리가 사람의 눈, 코, 입처럼 보인다. 화강암의 기암괴석이 산지사면을 따라 노출되어 있고, 이들 암석에는 토어, 풍화혈 등의 화강암 미지형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주변 식생과 어우러져 조망이 뛰어난 지형경관 자원이다.

신선대는 입석대와 청법대 중간지점에 있는 암봉으로 해발고도 1,016m이다. 산 정상부는 수 개의 암주들이 풍화되지 않고 남아 있어서 바위의 끝이 뾰족해 아찔한 느낌을 주지만, 푸근하게 퍼진 분지가 있어 바위의 날카로움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 준다. 주변 경관은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 만큼 아름답다.

청법대 위치한 토어 전경

문장대와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암봉인 청법대는 문장대에서 신선대 쪽으로 향하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바라보면 잘 볼 수 있다. 속리산 기암괴석 중 최고로 꼽히는 암석으로 부처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각기 개성이 있다. 제1봉은 장수모양, 제2봉은 불상모양, 제3봉은 대호상, 제4봉은 산성이 보이며, 제5, 6, 7봉은 성불사 쪽에서 조망할 수 있다. 청법대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심층풍화물이 모두 개석되고 남은 잔류 암괴지형으로 수 개의 토어 및 판상절리들이 관찰된다.

문장대

문장대는 해발고도 1,054m에 위치한 속리산의 석대이며, 문장대 자체의 경관도 좋을 뿐 아니라 그 전망 또한 장관이다. '문장대'는 세조대왕과 문무시종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으로 이 거대한 암봉이 구름 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라 부르기도 한다. 일반인에게 속리산의 정상으로 잘못 알려질 정도로 속리산의 주요 상징물로서 인지도가 매우 높다. 산 정상 부근은 인셀베르그로서 화강암의 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정상부의 평탄면에는 그나마, 그루브 등의 다양한 풍화지형들이 나타난다.

관음봉

관음봉은 법주사 북쪽계곡 안쪽에 있는 해발고도 985m의 암봉으로 문장대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관음이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말하는데, 보살은 대자 대비하여 중생이 고난 중에 열심히 그 이름을 외우면 곧 구제하여 준다는 보살이다. 관음봉은 화강암의 독립암봉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규모의 핵석과 토어가 관찰된다. 특히 수평 및 수직절리가 발달하여 수십 개의 토어들이 층층이 쌓아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묘봉(874m), 매봉, 금단산(768m) 등의 속리산 주능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암들과 큰군자산(948m)과 칠보산(778m)을 끼고 발달한 쌍곡계곡, 도명산(643m)과 낙영산(740m) 아래로 발달한 화양구곡의 암반과 기암들은 속리산이 말 그대로 바위의 천국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두대간에서의 속리산

지질학상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구분되는데, 현재의 히말라야·알프스 등 대산맥들은 습곡·융기 등의 조산운동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지형도 대부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특히, 신생대 3기와 4기에 걸친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나 동쪽이 높고 서쪽은 낮은 지형이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큰 줄기(大幹)'를 말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반도의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의 신성화와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 개념이었다. 백두산은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백두산은 우리 국토의 생명력의 원천이며, 그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국가의 심장인 수도의 명당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 백두산은 우리 영토 내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백두산을 국토의 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백두산이 현실적으로 우리국토의 머리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조선 초 세종 때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함에 따라 백두산이 민족의 산으로 자리하게 되었을 때이다. 그 후 백두산은 국토의 뿌리로서 정신적·상징적 의미가 더욱 강화되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태백산·지리산에 이르며, 산줄기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진 산지능선을 말한다. 이 산줄기는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두타산으로 내려오다 크게 용틀임하듯 굽어져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으로 뻗어 내린다. 이 후 추풍령,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나는데 그 길이는 도상거리 약 1,630㎞, 높이는 100여 m에서 2,740m까지 이른다.

속리산은 천왕봉과 문장대 능선이 백두대간 산줄기에 포함 된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속리산에 이르고, 덕유산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되어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한남, 금북정맥이 갈라지는 까닭에 속리산은 국토의 종갓집 산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를 반대로 표현하면 남한땅의 산줄기들이 이곳을 정점으로 몰려드는 형세라고도 볼 수 있다.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꼭짓점으로 하여 남한 땅의 모든 산들이 뻗어나가고 또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조선시대 3대명수로 불리는 우통수, 달천수, 삼파수가 있는데 삼파수가 천왕봉에서 발원한다. 천왕봉에 떨어진 빗물이 동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 북쪽은 한강, 남쪽은 금강으로 흐르는데 이를 가리켜 삼파수라 불렀다 한다.

이렇듯 산과 물이 크게 갈라지는 속리산은 예로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속리산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맞부딪치는 삼국쟁패의 요충지였는데, 삼년산성과 견훤산성이 이를 증명한다. 현재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강, 금강, 낙동강 물을 마시며 그 유역에 살고 있다. 그렇게 속리산은 속세를 떠나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다양한 식생의 전시장

정2품 소나무

속리산은 입구에서부터 600년 이상 된 정이품송이 버티고 있고, 그 주변에 다양한 식생이 산재하고 있다. 법주사쪽 사면에는 곧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은 해발고도 400m~600m, 높게는 1,000m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능선에 자생하고 있다. 소나무는 양수로서 계곡 쪽에 잘 자라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계곡 옆에까지 내려와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정2품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한 우아한 자태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사람들이 때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문장대를 향해 출발하면 길은 곧 숲속으로 들어간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신갈나무 같은 큰키나무 활엽수들이 숲을 이뤄서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 숲속으로 이어진다. 특히 기암괴석이 발달한 산세를 자랑하는 속리산에서 백두대간 등산로가 숲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실제로 백두대간 마루금의 정점은 바위 봉우리들을 지나가고 있지만, 그곳에다 길을 내기 어려운 사정 때문일 것이다.

백두대간 능선에는 신갈나무, 함박꽃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고, 등산로에는 원추리, 물레나물, 숙은노루오줌, 큰개현삼 등이 자라고 있다. 장각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헬기장을 지나서 능선의 경사가 누그러들면 바위지대가 나온다. 이곳에는 자주꿩의다리, 바위채송화가 꽃을 피우고 있고, 산오이풀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자주꿩의다리는 이곳부터 문장대에 이를 때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이 식물은 양지에 자랄 때는 자주색 꽃이 피지만, 음지에 자라는 것은 흰 꽃이 핀다. 이곳에서는 구실사리가 바위에 넓게 퍼져서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지대 식물이 속리산의 백두대간 능선까지 올라온 사실은 천왕봉 조금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 가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헬기장에서 상오리 쪽 장각동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이 등산로는 10년 이상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어 등산객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헬기장 주변에는 짚신나물, 산딸기나무, 질경이 등 양지를 좋아하는 저지대 식물들이 올라와 자라고 있다.

주변지역에서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는 속리산이지만 인간 간섭에 의한 식물상의 변화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는 물론이고, 법주사가 자리 잡은 백두대간 서쪽 사면 일대에서 그런 증거들이 쉽게 발견된다. 예로부터 사찰과 암자가 발달한 탓에 이곳을 중심으로 외래식물들이 속리산 산중으로 유입되었다. 상환암 부근만 하더라도 텃밭 주변에 강아지풀, 줄딸기, 개망초, 질경이, 환삼덩굴 등이 퍼져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망초, 환삼덩굴 같은 식물은 이곳 생태계의 입장에서 외래식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로 보더라도 귀화식물로서 악명을 날리고 있는 식물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상고암, 관음암 일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 암자들이 백두대간에서 직선거리로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음을 감안하면, 속리산 전체에 외래식물들이 유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자 주변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의 백두대간 능선 여러 곳에서도 외래식물이 눈에 띈다. 정이품송 같은 낙락장송이 해발 600m 이하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있지만, 고도가 높아진 대간 위로는 올라오지 않고 대신에 신갈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대간 높은 곳에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이렇듯 언제 찾아도 좋지만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에는 더 많은 것을 내놓을 듯한 여행지가 바로 속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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