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가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난 금오산…가을 단풍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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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가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난 금오산…가을 단풍 절경
  • 임동호 기자
  • 승인 2019.10.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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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금오산

소백산맥의 큰 줄기가 대덕산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지리산으로 뻗어가고 다른 하나는 가야산까지 이어지며 나머지 하나가 동으로 달려서 구미시와 김천시·칠곡군의 경계에서 매듭을 짓는 곳 바로 금오산이다.

금오산의 높이는 977m밖에 안되지만 옹골찬 바위가 들어찬 봉우리와 맑은 물이 솟는 골짜기가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나고 곳곳에 전설과 일화가 얽힌 유적이 있어 사철 사람을 불러모은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금오란 이름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스님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 곧 태양 속에 산다는 금오(金烏)가 나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이곳 사람들의 금오산에 대한 긍지와 존숭을 드러내는 설화의 한 토막이겠는데, 그밖에도 이 고장 사람들의 금오산에 거는 애정과 기대를 보여주는 얘기는 많다.

▲금오산성 다혜문
▲금오산성 다혜문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마애보살입상
▲마애보살입상

마애보살입상은 이 산의 정상부에 있는 약사암에서 가까운 북쪽 사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바위의 두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이용하여 새긴 점이 특이한데, 다른 곳에서는 아직 비슷한 예가 없다. 얼굴 부분은 새김이 깊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차츰 얕아져 발목에 와서는 선각에 가깝게 마무리되었다.

얼굴은 나중에 손을 보아 원래의 모습을 그려보기가 쉽지 않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면서 몸의 굴곡을 따라 발목까지 흘러내린 법의자락은 생기를 잃고 습관적인 옷주름이 반복되고 있다. 손바닥이 드러난 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린 오른팔이나 팔꿈치를 약간 구부려 손을 편 왼팔은 다른 부분에 비해 길고 굵어 균형을 잃고 있다.

바위가 앞으로 돌출하여 다른 마애불보다 조각이 쉬웠을 발도 투박하게 새기고 말았다. 그 아래 바위 모양을 따라 반원에 가깝게 돌아가면 연잎을 새긴 연화대가 이 보살을 받치고 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광배는 두광이나 신광이 모두 이중으로 처리되었는데, 그 안에는 아무런 새김이 없다.

오른발에 무게중심이 옮겨지도록 살짝 허리를 튼 자세, 광배 끝에 살아 있는 참한 선, 그리고 모서리를 이용한 조각기법 등이 이 마애보살입상에서 눈에 들어오는 정도이니 그 의미나 가치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야 할 듯하다. 높이 5.55m이고, 보물 제490호이다.

▲대각국사비
▲대각국사비

금오산의 동쪽 사면, 행정구역상으로는 칠곡군 북삼면 숭오리에 대각국사비가 있다. 보호각 안에 서 있는 비는 그 주인공 대각국사의 명성이나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소박한 편이고 형태도 고려시대 석비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귀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연꽃무늬로 사방을 두른 장방형의 대석이 앉았고, 여의주를 다투는 용무늬가 호화로울 이수는 구불구불 구름무늬만 가득한 지붕돌로 변하고 있다.

비신의 주위를 돌아가며 폭 8㎝ 정도로 아주 얕게 새긴 당초문은 매우 섬세·정교하고 아름답지만 비신은 다른 부재에 비해 두께가 얇아 약한 느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라 말 고려 초 선사들의 부도나 탑비가 대체로 호화롭고 장식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종 승려도 아니고 더구나 왕자 출신인 대각국사의 비가 이처럼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담박한 이유가 달리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보다 앞서 개성 영통사에 세워진 또 다른 대각국사비가 귀부는 갖추고 있지만 이수는 이미 지붕형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면 양식적인 변화가 반영된 듯하다.

▲석조석가여래좌상
▲석조석가여래좌상

대각국사는 고려 천태종의 문을 연 고승으로 법명은 의천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경덕국사를 은사로 하여 출가했다. 스승이 죽자 강의를 대신 맡을 만큼 학문에 정진했으나 불교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1085년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송나라에서 여러 고승들과 교유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사상을 심화시킨 그는 이듬해 불교전적 3천여 권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요·송·일본 등에서 서적을 수집하고 국내의 고서를 모아 『고려속장경』을 간행하는 한편, 고려 초부터 큰 세력을 형성한 선종과 이에 맞서 현종 이후 점차 힘을 회복하여 대립하던 교종의 두 종파를 아우르기 위해 천태종을 열어 교단의 정리와 국민사상의 확립에 힘을 기울였다. 이밖에도 속장경의 간행목록이라 할 『신편제종교장총록』, 화엄 관계 전적에서 핵심만을 뽑아 모은 『신집원종문류』, 그의 행적과 시문이 담긴 『대각국사문집』 외에 여러 저서를 남겨 고려 불교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금오산은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여서 국방유적으로 금오산성이 일부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처음 축조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수비와 피란에 중요하게 이용되었던 대규모 산성이었다. 그 구조는 산의 정상부를 따라가며 석축을 돌린 테뫼형의 내성과 정상부에서 북쪽을 향해 흐르는 큰 계곡을 끼고 포곡식으로 석축을 쌓은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조의 석축산성이다.

내성만이 있던 조선 초까지의 모습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7,644척 높이가 7척이며, 절벽을 따라 성이 된 것이 거의 절반이나 되는데 매우 높고 험하다. 안에 못이 셋, 시내가 하나 있다.” 그뒤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어 1495년에 성벽을 수축하였고, 1597년 임진왜란 때에는 도체찰사의 영을 이곳에 두기도 하였다. 1639년에는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북쪽 계곡을 둘러싸는 외성을 쌓아 이중의 산성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이때 이룩된 성의 모습이다.

▲금오산 케이블카
▲금오산 케이블카

최근 외성의 일부를 복원하여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외성의 출입문이자 북문에 해당하는 문루의 홍예 밑을 통과할 수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길게 이어진 성벽을 조망할 수 있다.

▲채미정
▲채미정

이밖에도 길재가 은거했던 곳이라는 채미정, 도선국사가 수도했던 곳이자 대혈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도선굴, 여름이면 떨어지는 물을 맞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로 북새통을 이루는 대혜폭포(일명 명금폭포) 등의 유적과 명소가 금오산의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다.

▲도선굴
▲도선굴

금오산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정된 도립공원이다. 평지 가운데 우뚝 솟은 산(976m)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산세가 제법 깊어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등산로를 따라 다양한 문화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케이블카가 있어 중턱까지 쉽게 오를 수 있기에 찾는 사람이 더욱 많다. 금오산 매표소를 지나 건너게 되는 대혜교에서 산 중턱의 해운사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는데 약 800m의 길이이다.

케이블카가 끝나는 곳에 있는 해운사는 근래에 세워진 절로, 옛날 이곳에는 도선이 세운 대현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금오산에서 가장 크고 시원하다는 대혜폭포가 있다. 높이가 28m로 물이 부서지면서 내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릴 만큼 크다. 금오산을 경상북도의 소금강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다혜폭포(명금폭포)
▲다혜폭포(명금폭포)

또 하나 금오산에서 찾아볼 만한 곳이 도선이 수도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도선굴인데, 대혜폭포와 갈라지는 길에서 반대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찾아가는 길이 벼랑으로 난간을 둘러놓았는데 조심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 인근 주민들이 칡덩굴에 몸을 의지해 이곳 굴에 피난을 왔다고 전해지며 많을 때는 50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굴 안에는 불상이 있으며 기도를 하기 위하여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정상까지는 두 시간 정도 소요되니 한 나절 산행으로 적당하며, 케이블카를 타고 대혜폭포까지 올랐다 하산하는 코스도 가벼운 나들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취사가 가능한 야영장이 있으며, 몇 가지 놀이기구가 갖추어진 작은 놀이공원인 금오랜드도 공원구역 내 위치하고 있다. 또 오리배와 보트를 이용할 수 있는 유선장이 주변에 있다.

금오산으로 가는 길은 먼저 구미역 앞 사거리에서 1번 시도로를 따라가면 금오산 관광단지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케이블카(주차장에서 해운사까지 운행)나 등산로를 이용해 금오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는 금오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또한 약사암 북쪽 암벽에는 마애보살입상이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도중에는 도선굴과 명금폭포를 만날 수 있다. 해운사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구미역 앞에서 금오산 관광단지로 다니는 버스가 자주 있다.

한편 대각국사비는 약목삼거리에서 김천으로 난 4번 국도를 따라 약 2.8㎞ 가면 길 오른쪽에 숭오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나 있다. 마을길을 따라 약 3㎞ 가면 숭오리 숭산마을 끝에 있는 대자연가든식당 앞에 닿고 식당 앞에서 계속 이어진 비포장길을 따라 1.2㎞ 가면 대각국사비가 있는 대각사가 나온다. 승용차는 대각사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숭산마을에 주차해야 한다. 왜관에서 김천으로 약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를 타고가다 숭오리 입구 골뜸 버스정류장에 내려 걸어가야 한다.

금오산 관광단지와 시내 곳곳에는 다양한 숙식시설이 있다. 숭오리 주변에는 식사할 곳은 몇 곳 있으나 잠잘 곳은 없다.

임동호 기자    ldh62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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