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경의 '시선']국민의 역린과 미자하(彌子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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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의 '시선']국민의 역린과 미자하(彌子瑕)
  • 송영섭 기자
  • 승인 2019.10.21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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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본부장
▲윤태경 본부장

용안, 용상, 곤룡포, 용의 눈물. . .신화나 전설상의 신비스러운 동물, 용이 포함된 단어들이다. 용(龍)은 날아다니는 신비스러운 가상의 동물이다. 전해지기를 용은 온순하고 사람과 친근하다. 사람이 용에 올라타기도 한다. 용은 턱 밑에 거꾸로 박힌 비늘을 하나 갖고 있다. 역린(逆鱗)이라 불린다. ‘한비자(韓非子)’ 세난 편(說難篇)에 따르면,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동양에서 용은 군왕을 상징한다. 역린은 군왕이 듣기 싫어하는 것, 민감하고 아파하는 곳을 일컫는다. 역린은 2014년 현빈이 주연한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군왕의 역린을 건드리면 죄질에 따라 상응한 처벌이 내려졌다.

얼마 전까지 역린은 대통령 등 최고 통치자의 분노, 격노의 의미로 사용돼왔다.

민주화가 진전된 요즘은 대통령을 일컫는 ‘각하’ 용어 폐기처럼 대통령의 분노를 뜻하는 역린도 잘 사용되지 않는다. 역린은 전근대적인 왕조시대나 낙후된 민주국가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법무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방미효과를 퇴색시켰다고 격노했다. 예전 같으면 흔히 있었을 ‘역린을 건드렸다’는 식의 보도는 없었다.

요 근래에는 ‘대통령의 역린’이 아닌 ‘국민의 역린’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정이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역린’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국민의 역린, 즉 국민이 가장 싫어하고 건드리면 가장 아파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곳을 건드리면 권력자든 그 누구든 살아남지 못한다. 국민이 가장 분노하고 가장 용서하지 못할 영역은 어디일까?

국민의 역린은 ‘공정과 정의’다. 대한민국 국민의 ‘공정과 정의’ 사랑은 유별나다. ‘공정과 정의’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병역문제와 대학입시 영역이다. 병역비리와 대학입시비리 유발자에 대한 국민의 단죄 칼날에는 성역이 없다. 이회창은 병역비리의혹으로 두 번이나 대선낙방을 했고, 가수 유승준은 병역기피로 17년째 고국방문이 거절돼 해외유랑민 신세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대학입시비리는 최순실 사건으로 비화됐다. 그 역린의 불길은 당시 현직 대통령까지 삼켜 버렸다. 권좌에서 내려온 당시 대통령은 지금 영어의 신세다.

전(前) 정권시절, 국민 역린의 달콤한 과실은 현 집권세력이 다 따먹었다. 달콤했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 강조했다. 공정과 정의를 침탈당해 가슴아파했던 국민들은 ‘공정과 정의’를 앞장세우는 그들에게 열광했다. 집권 초 한쪽만을 겨냥한 적폐청산이 일정 부분 지지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조국 법무장관 사건이 터졌다. 초기에 재산과 재단비리의혹이 터져도 국민들의 관심은 저조했다. 조국 딸 조민의 대학입시 및 의전원 입학비리문제가 터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모두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개구리 붕어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장관되기 전 조국의 말이다. 그랬던 조국장관이 자신의 딸 입시에선 “용의 코스”를 공정과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그런 부적격 후보자를 ‘공정과 정의 수호’가 본연의 임무인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철옹성 같은 대통령 지지도가 균열을 보이더니 연일 하락세가 뚜렷하다. 결국 35일만에 조국장관은 사퇴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 30%를 국정동력원천으로 삼아왔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지지도였다. 국민의 역린이 작동하자 콘크리트 지지는 찌꺼기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한비자 역린 바로 앞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위나라 왕의 사랑을 받던 미자하(彌子瑕). 위나라 법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타면 발이 잘리는 형벌이 있었다. 미자하가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 듣고 몰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왕이 말했다 “효자다. 어머니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벌도 잊었구나.”

다른 날, 왕과 정원을 거닐다가 맛있는 복숭아를 먼저 먹다가 왕에게 남은 반쪽을 줬다.

왕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으니 나보고 맛보라고 주는 구나”

왕의 사랑이 식자 왕이 말했다. “이 놈은 옛날에 왕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먹으라고 한 놈이다.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미자하의 행동은 바뀐 것이 없다. 왕의 사랑이 식었다는 것만 변했다. 한비자는 미자하의 고사가 알려주는 역설을 가슴에 새기라고 강조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국민 역린을 건드리면 권력자라도 ‘미자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랑이 미움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송영섭 기자    songinmo50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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