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충구 서강대 명예교수

[일산=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제 밑궁기 취취부레한 게 남우 말으 한다'. 중국 지린(吉林)성 두만강 유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조선어 방언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말 속담이 있다. 힌트를 주자면, '밑궁기'는 '밑구멍', '취취부레하다'는 '더럽고 지저분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저 자신도 깨끗하지 못한 주제에 남의 흉을 본다'는 뜻. 정답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되겠다.

국어학자 곽충구(69) 서강대 명예교수가 이 지역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방언을 수집·연구해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 사전'(전 2권)을 출간했다. 표제어 3만 2000여개, 425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1995년 처음 현장 조사를 시작해 24년이 걸렸다. 지난 19일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만난 그는 "40대 중반 팔팔할 때 겁도 없이 시작한 일"이라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만강 중·하류 지역 육진방언(六鎭方言·함경북도 회령·종성·온성·경원·경흥에서 쓰는 방언)은 17~18세기 서울말과 거의 흡사해요. '좋다'를 ' 다', '짧다'를 '댜르다'고 발음하는 식이죠. 세종이 만든 성조(높낮이)가 남아 있고, 옛 국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박사 논문을 쓰면서 육진방언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30년 전 대한민국학술원이 제작한 '한국 언어 지도집'에서 북한 방언을 담당하면서 현장 조사 필요성을 절감했다. "문헌만으로 국어의 변화 과정을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었죠." 1995년 지린성 훈춘시 경신진을 찾았다. 선양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연길에서 하룻밤을 잤다. 처음엔 "남조선에서 왔느냐"며 특무(간첩)로 오해도 받았다. 그는 "어르신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한국서 가져간 과자와 담배를 드리며 조금씩 경계를 허물었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은 두만강 중·하류 마을 8개 지점. 경신진 회룡봉촌과 벌등촌을 중심으로 도문시 월청진, 용정시 삼합진 등 한민족 전통문화가 보존된 마을을 찾아가 함경도 이주민 40여명을 인터뷰했다. 안식년 2년을 꼬박 바쳤고, 방학마다 달려가 주민들과 부대꼈다.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지만, 조사자 90%가 고인(故人)이 됐다"고 전했다.

분명 한국말인데 외국어처럼 생소하다. 감사 인사는 "아심태니꾸마!(고맙습니다)"라 하고, 어르신에겐 "이쌔 깨까잠드?(요즘 안녕하십니까)"라고 안부 인사를 한다. 팔순 노인이 "내 안즉두 뎡뎨하디, 무"라고 하면 안심해도 좋다. "나 아직도 정정하지 뭐"라는 뜻이다. "그 지 아덜이 다 츨츨하더라"는 "그 집 애들이 다 잘생겼더라"는 칭찬이다.

곽 교수는 "함북 방언 상당수가 이미 사라졌고 10년 지나면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기록해야 했다. 단어마다 발음과 성조, 품사, 뜻풀이, 용례, 관용구를 넣었다. 용례에는 수집 과정에서 채록한 문장을 풍부하게 담았다. 출생부터 제례까지 통과의례, 가옥, 음식과 의복, 세시풍속 등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민속 용어까지 꼼꼼히 조사해 넣었다. 가랖떡·골미떡·꼬장떡 등 떡 종류만 37개다.

"백두산 한 번을 못 올라갔어요. 하루 8~10시간 인터뷰하고 밤엔 녹음을 풀며 정리하느라 탈진 상태가 됐죠." 어느 날 밖에 나가니 하늘이 먹물 뿌려놓은 듯 새까만 점으로 보였다고 했다. 눈을 혹사해 망막이 찢어진 거였다. "요령성에서 조사한 평안도 방언 사전도 써야 하는데… 아휴, 더는 못해요. 내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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