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리넷 신동' 김한 사진제공=크레디아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첼로 신동'이 장한나(37)라면, '클라리넷 신동'은 김한(23)이다. 2000년대까지 클래식계에서 음악 좀 한다는 아이들은 피아노·바이올린으로 쏠렸다.

2010년대 들어 관악기를 비롯 다양한 분야에서 영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김한이 대표주자였다. 여느 신동이 그렇듯 "처음에 취미로 하다"가 해당 악기군을 대표하는 독주자가 됐다.

지난 18일 서울 신촌동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만난 김한을 만나고 결심했다. 더 이상 '신동'이라는 수식으로, 스펙트럼을 좁히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다.

김한은 느긋한 성품처럼 음악적 행보에서도 급하지 않다. 영국 이튼 칼리지에서 또래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처럼 공부하고 축구를 하며 지냈다. "악기에만 몰두했으면 연주 스킬은 더 좋아질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어릴 때 신동 소리를 듣다가 어느 순간 잊혀버리는 연주자들도 많잖아요. 거기에(신동에) 거리를 두고, 세상에 나와 있었던 것이 그 부담을 떨쳐낼 수 있었던 이유 같아요."

어릴 때부터 스승, 형, 누나 등과 항상 어울린 김한은 한 때 또래,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만나면 어색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기숙사 학교였던 터라 "뭐가 됐든 친구들과 계속 부딪힌 것이 조금 더 저를 단단히 만들었다"고 긍정했다.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도 김한을 한 때 따라 다녔다. "유명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때가 됐어요. 저에 대한 조언을 잘 새겨듣고자 하죠. 여러 말들을 걸러낼 수 있는 필터가 생겼다고 할까요.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 듣고 제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홉 살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리코더를 부르는 것에 흥미와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김한은 클라리넷을 들자마자 일취월장했다. 열한살 때인 2007년 자기 이름을 내건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이후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김한은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에서 '아시아인은 관악기를 못 분다'는 편견을 깨나가는 주인공이 됐다.

지난 9월에는 클래식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 '제68회 ARD 국제 음악 콩쿠르' 클라리넷 부문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면서 새삼 주목 받았다. 당시 청중상, 헨레 특별상까지 받았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에서 클라리넷 부수석으로 몸 담고 있기도 하다. 독주자를 고집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탄탄한 오케스트라 입단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한국 연주자 분들이 워낙 잘하세요. 해외에서 일하시는 관악 주자분들도 많고요. 오케스트라는 저희에게 회사 같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곳인데 모두 잘 녹아들어가죠. 예전에는 한국 연주자들이 언어 문제, 낯가림이 심해서 힘들어했다는데 지금은 달라요. 어릴 때부터 해외 문화를 경험하니 낯선 부분이 없어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안정감이 필요했어요. 프리랜서도 좋지만, 제 인생에는 불확실한 것이 많았거든요."

한국 오보에 연주자 함경(25)과 함께 몸 담고 있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분위기는 정말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정말 인종차별이 없는 곳이에요. 제가 아직 가장 어리기는 하지만 관악 쪽 연주자들이 젊고, 새로 단원을 뽑아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김한의 스펙트럼은 넓다. 함경, 플루트 연주자 조성현(28) 등과 결성한 목관 앙상블 '바이츠 퀸텟' 멤버로도 활약하며 실내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목관악기계 어벤저스'로 통하는 이 팀의 주축 멤버들은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취약지점인 목관악기계를 이끌 새로운 영웅들로 통한다. 내년 12월 24, 25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와 협연이 예정돼 있는 등 각자 바쁜 스케줄에도 틈틈이 뭉쳐 연주하고 있다.

김한은 오는 21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여는 독주회로 먼저 인사한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슈콥스키가 함께 한다. 브람스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과 풀랑크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ARD 국제 음악 콩쿠르 연주곡이다.

아널드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만토바니의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버그' 등은 이번에 처음 연주하는 곡들이다.

김한은 몇 년동안 새로운 곡을 연주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바쁜 연주 활동, 콩쿠르 참여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5, 6년 만에 새 악보를 읽어 보니 '제가 너무 안일하게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어렵긴 한데 새로운 곡을 한다는 생각에 너무 뿌듯하고 재미있어요"라며 설??다.

클라리넷은 온화하고 따뜻하며 은은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어떤 사람, 환경에도 어울리는 김한과 닮았다. "클라리넷은 저랑 비슷한 악기에요. 목관악기 중 음 범위가 크고 셈여림도 조절할 수 있죠. 앞으도로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번 김한의 연주는 금호아트홀이 올해 '숨'을 부제로 선보이는 '금호아티스트' 시리즈 의 하나다. 악기에 숨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 연주자들에게 숨은 한몸과도 같다.

"숨은 제게 특별하고 꼭 필요한 존재죠. 피아노는 건반을 쳐서, 바이올린은 활을 통해 연주하잖아요. 관악기는 몸의 일부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런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 부르는 것에 가깝죠." 김한이 클라리넷 연주하듯 흥얼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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