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정 발굴 조사 중 발견한 육각형 모양의 온돌 구조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궁궐 내에서 벌어진 스케이팅 파티에는 수도 서울의 외국인 거주자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섬 안에 있는 여름 정자는 따뜻했으며 가벼운 간식거리도 제공됐다"

1895년 초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는 경복궁 향원정에서 열린 스케이팅 파티를 이렇게 묘사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얼음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외국인들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들이 한겨울 정자에서 따뜻하게 스케이트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온돌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향원정 보수 공사 도중 독특한 온돌 구조를 발견해 20일 공개했다.

발굴 조사 결과, 구들장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구들장 밑으로 난 고랑들이 발견됐다. 연기가 나가는 통로인 연도(煙道)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원정의 온돌은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져 가장자리만 난방이 되는 구조였다. 일반적으로 방바닥 아래 부챗살처럼 퍼져 방 전체를 데우는 온돌과는 사뭇 다른 형태. 온돌이 설치된 정자도 희귀한 데다, 정자 가장자리를 따라 만든 온돌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배병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은 "향원정은 거주나 취침 목적으로 만든 건물이 아니고, 규모도 7평 남짓해 가장자리만 난방해도 중앙까지 열기가 전달됐을 것"이라며. "이곳 지반이 약해 온돌이 중앙을 관통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배 소장은 "보통 건물은 가운데 온돌이 있고 바깥에는 마루가 있는데 향원정은 중층으로 아래에는 온돌, 위는 마루를 갖춘 독특한 경우"라고 덧붙였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굴뚝을 세우는 대신 아궁이에서 피워진 연기는 기단 아래쪽을 통과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태영 궁능유적본부 사무관은 "공사를 마치고 온돌을 복원하면 실제로 온돌이 작동하는지, 연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실험할 것"이라고 했다.

향원정은 1870년대 고종이 건청궁을 만들면서 인공섬을 조성하고 그 위에 지은 육각형 정자다. 해방 이후 몇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계속해서 건물이 기울고 뒤틀려 지난해 11월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조사로 정자가 계속 기우는 원인도 찾았다.

향원정의 6개 기둥 중 동남쪽 주춧돌을 받치고 있던 넓적한 돌에서 균열을 발견했다. 문화재청은 지반 보강 후 향원정을 재설치하고, 건청궁과 향원정을 잇는 취향교도 함께 복원해 2020년 7월쯤 다시 개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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