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혐생에 치여서 공연을 못 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오니 왜 이리 멋진 공연들이 많나요!"(공연·뮤지컬 카페의 글), "덕생에 올인하고 싶다가도 해투(해외 투어)와 DVD 때문에 혐생 또한 버릴 수 없어."(BTS 팬블로그의 글)

이 두 문장을 이해한다면 뮤지컬과 아이돌의 팬카페나 팬블로그를 꽤나 들러본 사람이다. '혐생'이란 '혐오스러운 인생' '덕생'은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파고드는 일)하는 인생'이다. 혐생은 덕질을 하지 않을 때의 일상을 가리키는 것이고, 덕생은 혐생의 대척점에 있다. 인생 전반을 비관적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 신어(新語)다.

아이돌 팬카페 등에서 '혐생'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10대에서 30대까지, 광범위한 연령대에서 쓰고 있다. 중·고등학생에겐 학업이나 사교육 때문에 스트레스받거나 학교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혐생이고, 직장인에겐 과도한 업무를 하거나 박봉을 받는 것이 혐생이다.

가정주부들이 육아와 가사에 지친 일상을 혐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볼 수 있다. 학교나 직장이 속한 동네는 '혐생지(地)'이고, 일상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을 "혐생에 치인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한 20대 직장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주말 혐생에 치여서 최애(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음방(음악 방송)을 놓쳤다"며 "주말에 근교로 야유회를 가자는 윗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올렸다.

인생을 혐생과 덕생으로 나누는 태도는 우울하고 자조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혐생 때문에 덕생을 살게 됐고, 덕생 덕분에 혐생을 살아나간다. 공기업에 다니는 한모(35)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은 최소 스무 번 이상 보는 덕생을 살고 있다. 그는 "퇴근 후나 주말에 뮤지컬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보면서 혐생(직장 생활)을 지탱할 원동력을 얻는다. 혐생은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고, 덕생은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덕생을 위해서 혐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 현모(22·학생)양은 "용돈을 벌기 위해 이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아이돌의 굿즈(goods·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를 사기 위해서 가끔 새벽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며 "덕생이 주는 즐거움, 짜릿함을 위해서라면 혐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사회생활' '삶'과 관련된 일반 신어가 전체 일반 신어 중 41.3%를 차지했다. 입시나 취업에 매달리거나 혹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든 단어들이다. 그것은 '잉여'(남아도는 인생)에서 시작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을 거쳐 '혐생'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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