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스위스인 마르코(18)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서울에 왔다. 그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준비를 위해 3개월간 강남 원룸에서 지내며 매일 학원에 다녔다.

요즘은 '말투 때문에, 말투 덕분에'라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다며 잔뜩 밑줄 그은 책을 보여줬다. 그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고 싶은데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면 좋은 대학에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미국이나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듯,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단기 어학연수를 오는 외국인 학생들로 요즘 서울 학원들이 북적인다. 휴가나 방학을 이용해 짧게 한국어 연수를 오는 학생들을 겨냥해 한국어 전문 학원들이 생겼다. 서울 강남·홍대 일대의 외국인 대상 한국어학원만 10여개. 민병철어학원 등 기존 영어학원도 속속 한국어 코스를 열고 있다.

지난 9월 강남의 대형 한국어학원인 렉시스어학원. '눈썹'이란 단어를 가르치며 선생님이 BTS 뷔의 눈썹을 가리키자 "잘생겼어요!" "좋아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이 학원을 찾은 학생 수는 2000여명으로 매년 학생 수가 20~30%씩 증가하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고시원에 살며 학원에 다니는 루카(18)는 "1년 전에도 단기 어학연수를 왔고, 올해 학원에 재등록해서 또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면서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 민주주의를 알리는 국제 NGO의 한국 사무소에서 인턴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휴가를 이용해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직장인도 있다. 미국에서 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제러미(39)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한국어 수업을 듣고 저녁엔 카페에서 복습한다. 주말에도 6시간 반씩 한국어를 공부한다. 걸 그룹 '이달의소녀'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IT 산업에서 앞서가는 나라니까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로 블록체인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대학들이 운영하는 한국어학당엔 장기간 한국어 수업을 들으려는 외국 학생들로 문전성시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외국인 어학연수생은 2017년 3만 명을 넘고, 올해 3만8740명에 달했다. 2014년(1만7453명)에 비해 5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달 4일 경희대 국제어학원 '초급 한국어' 강의실에선 외국인 학생 12명이 '열공' 중이었다. 수업 주제는 '집 구하기'. "우리 집 월세 비싸요. 35만원이에요." 베트남 학생 부딘 록의 푸념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중국에서 온 차이리는 '보증금과 월세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제법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대답을 해냈다.

스웨덴 학생 에일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푹 빠져 스톡홀름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찾아 들었다. 그는 "한글이란 문자는 예술처럼 아름답다"며 "문장 구조가 다양해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르완다에서 온 다니엘은 한국어의 장점으로 '높임말'을 꼽았다. "영어, 프랑스어, 서아프리카어를 할 줄 알지만, 그중 한국말처럼 높임말로 상대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수 있는 언어는 없죠."

한국어능력시험의 인기도 최근 몇 년 새 크게 높아 졌다. 2011년 12만 1550명에 그쳤던 지원자 수는 지난해 처음 3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엔 37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어 강사 이호진씨는 "예전엔 K팝 때문에 취미로 배우는 학생이 많았는데 최근엔 대학교 진학이나 한국 취업을 목표로 찾는 학생이 많다"면서 "모녀가 함께 수업을 들으러도 오고 10~60대까지 연령대가 굉장히 넓어졌다"고 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