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인하대학교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중국 단둥으로 조사를 갔을 때였어요. 할머니가 바나나를 주시면서 '기티디 말라요' 하시는 거예요. '남기다'란 뜻의 '기티다'라는 말이 평안도엔 아직 남아 있었어요. 남쪽 방언에도 '문 지쳐둬(문 닫지 말고 남겨둬)'라는 말이 있거든요. 남쪽은 '지치다' 북쪽은 '기티다'로 쓰는 거죠."

한성우(51)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남도(南道)부터 옌볜까지 틈만 나면 방언 기행을 떠난다. 평안도 말을 조사하려고 신의주 건너 중국 단둥까지 10여 차례 답사를 다녔다. 한번 답사를 떠나면 보름 넘게 조사 대상의 집에 살면서 그들의 언어를 담아온다. 최근엔 인천을 원도심, 강화, 연안 도서, 서해 5도로 나눠 10년간 토박이 어르신들을 인터뷰한 '가깝고도 먼 인천말'도 펴냈다.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의 경기도 방언 검수도 맡고 있다.

지도와 녹음기, 알 수 없는 부호가 가득한 공책을 펼쳐놓았다가 여관 아주머니가 간첩으로 신고하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온 다단계 약장수로 오해받아 문전박대당했다. 기억에 남는 사연도 한둘이 아니다. 그는 "단둥에서 만난 타냐 할머니는 평안도·함경도 말은 물론이고 러시아·몽골 말까지 자유자재로 했다"면서 "일제강점기에 연해주 지역으로 갔다가 우즈베키스탄·몽골·중국까지 거친 할머니의 이동 경로엔 우리 민족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을 떠도는 방언 연구자지만 옌볜 지역의 함경도 방언에 특히 애착이 간다. 한 교수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바로바로 쏟아내는, 현정화 선수 식의 전진 속공형 말투가 마음에 든다"면서 "접고 또 접어서 에둘러 말하는 충청도 제 고향(아산) 말과 반대여서 더 그런 듯하다"고 했다.

함경도 말 중에서도 '내 오람까?'라는 말을 좋아한다. 표준어로 바꾸면 '나한테 오라고 하십니까?'인데, 맥락상 의미는 '제가 가고자 하는데, 오라고 하시면 제가 가겠습니다'란 뜻이다. 한 교수는 "'갈까요'가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드러낸다면 '오람까'는 듣는 사람의 의지를 묻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말을 연구하려고 북한 드라마나 영화도 자주 본다. 요즘은 북한에서도 남한 드라마나 가요를 자주 접해 '고기겹빵'을 '햄버거'로, '종합지짐'을 '피자'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한 교수는 "말은 아주 빨리 변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방언이든 북한 말이든 모두 한국어를 이루는 씨줄과 날줄이죠. 억지로 배우거나 가르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만 있다면 모두 하루 만에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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