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월드투데이] 임동호 기자 = 경북 경산에서 6세기에 신라인이 토지 운영과 조세 제도 양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 글씨[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은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 도로 구간 경산 소월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에서 삼면에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와 함께 신라시대 토지 관련 목간을 찾아냈다고 9일 밝혔다.

목간은 길이가 74.2㎝이며, 육면에 글씨를 적었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제작 시기가 5세기 전반으로 판단됐는데, 목간은 서체나 내용을 근거로 이보다 한 세기 늦은 6세기 유물로 짐작됐다.

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토기와 목간이 거의 같이 나왔다"며 "현재로서는 토기와 목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름 1.6m인 원형 수혈 유구 성격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일 1차 판독 작업을 진행해 글자 94자를 읽었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6세기에 경산 인근 토지 현황을 적은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글자 양이나 글씨 연습 흔적을 보면 예비문서나 기초문서로, 이후에 정식 문서를 작성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목간 형태에 대해 "목간치고는 상당히 길고, 나무를 일부러 칼로 깎아서 육면을 만든 것 같다"며 "신라 변두리 지역에서 목간을 수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목간 A면에는 '십부감말곡답칠(?)□제상일결 구미곡삼결 제하십부'(?負甘末谷畓七(?)□堤上一結 仇彌谷三結 堤下?負)라는 글자가 있으며, 다른 면에도 숫자와 논 답(畓), 밭 전(田) 자 등이 있다.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그중 답(畓), 골 곡(谷), 방죽 제(堤) 글자와 조세 부과 단위인 결(結), 부(負) 자에 주목했다.

전 주무관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그 주변에 논을 만든 뒤 이에 대해 세금을 수취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답(畓), 결(結), 부(負) 자는 언어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목간 작성 시기를 추측하는 데에도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우리나라 고유 한자인 답(畓)은 561년에 건립한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처음 나온다고 알려졌는데, 경산 목간도 6세기 중엽 전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결부법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인 7세기에 사용했다고 전해졌으나, 경산 목간으로 인해 시행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연구소는 강조했다.

결과 부는 모두 토지 면적 단위로, 154㎡인 부를 100개 합치면 한 결이 된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6세기에 중앙에서 나온 지방 행정관이 생산력을 높이고 세금 수취를 추진하기 위해 쓴 것 같은데, 신라 지방행정 체계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주 교수는 "6세기 유물인 영천 청제비나 대구 무술명 오작비가 인근에서 나온 것처럼 경산에서도 비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