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마다 뭉쳤던 4인방이 올해는 차를 마시며 송년회를 했다(위). “밀레니얼만 일찍 헤어지는 걸 좋아하는 게 아녜요. 다들 워낙 바쁘잖아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왼쪽부터 외국계 음반 회사에서 일하는 심지언 이사, 브릭웍스 우미례 이사, 몬스터에너지코리아 최민혜 이사, 영상감독 박인수씨. 꽃꽂이를 하거나(아래 왼쪽) 네온사인을 만들면서(아래 오른쪽) 보내는 송년회도 요즘 인기다[제공=커뮤니크]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주류업체인 신세계 L&B는 올해 직원 70여명이 영화관 하나를 대관해 다 같이 영화 '블랙머니'를 보면서 햄버거를 먹는 것으로 송년회를 대신하기로 했다.

김설아 마케팅파트장은 "이렇게만 끝내는 게 어쩐지 섭섭하고 '그래도 연말인데 다 같이 고기라도 먹으면 좋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저는 이제 정말 꼰대가 됐나 보다"면서 웃었다.

'2차 안 가는 송년회'도 이젠 옛말이다. 2차는 당연히 안 가고, 1차만 하는 송년회도 사라지고 있다. 저녁이 아닌 점심에 회식을 하는 건 기본. 이젠 그마저도 건너뛰고 다 같이 차를 마시거나 꽃꽂이 수업을 함께 들으며 보낸다. 밀레니얼 세대가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시대, 2019년의 송년회 분위기는 작년과 또 달라졌다.

현대카드 김태형 차장은 "팀원들에게 '목요일 오후 5시 반, 신촌 광화문 일대'로 송년회 일정을 일단 공지한 뒤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 송년회 하면 다들 싫어해요.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작한 이후로 젊은 직원들은 금요일에 연차나 반차를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빨리 먹고 일찍 가고 싶어 하니, 되도록 대중교통 잘 갖춰진 곳에서 5시 반쯤 만나면 좋겠죠."

윗사람이 짜장면 먹고 싶다고 직원들이 파스타 포기하고 중국집 따라가는 건 구석기 시대 얘기다. 이젠 시간과 장소, 메뉴까지 가급적 아랫사람에게 맞춰야 뒤탈이 없다.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의 한석동 차장은 "팀원들에게 평소 가고 싶어 했던 핫 플레이스를 추천받아 추린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찍어 올리기 좋은 곳 위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 '서울리안' '바 차차'나 한남동 '보르고한남'처럼 금방 뜰 것 같고, 아직 정식으로 문 열지 않은 '가(假)오픈' 레스토랑을 찾아 예약할수록 반응이 좋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브런치 송년회 인기도 갈수록 뜨겁다. 최근 웬만한 호텔 브런치는 만석. '아점'이 어렵다면 '점저'로 택한다. 홍보마케팅 업체 프레데릭앤컴퍼니 정상훈 이사는 "오후 1~2시쯤 호텔 뷔페로 늦은 점심을 먹고 바로 퇴근하자고 할 때 직원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전했다. "뮤지컬 다 같이 보는 것도 이젠 귀찮아하니까요. 일찍 헤어질수록 일등 송년회죠."

술은커녕 아예 밥을 건너뛰기도 한다. 신라호텔 측은 "로비 라운지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송년회를 즐기는 이들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꽃꽂이 정도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덕동 '더로맨티크' 플로리스트 김수경씨는 "증권회사나 로펌 등 곳곳에서 문의가 들어온다"고 전했다.

"지난주엔 한 대사관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송년회 겸 플라워 클래스를 예약하고 싶은데 어르신들 설득한 뒤 다시 전화하겠다'고 물어봤어요(웃음)." 연말 분위기에 맞춰 크리스마스 리스를 다 같이 만들거나 촛대 장식을 만들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직장인 대상 워크숍 기획업체 '이너트립'은 아예 '송년회 워크숍' 프로그램 십여 가지를 내놨다. 네온사인 만들기, 실내 컬링, 필라테스처럼 단체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인기다. 12월에만 53곳이 예 약했을 만큼 인기다.

갈수록 더 '심플해지는' 송년회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작년에 밤 9시에 '땡!' 하고 마치는 이른바 '신데렐라 송년회'를 진행했던 홍보대행사 커뮤니크는 "아쉽다"는 일부 의견을 받아들여, 올해는 원하는 직원에 한해서만 따로 2차를 갖기로 했다. 신명 대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의견을 받아주고 끌어안는 게 회사의 숙제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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