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시는 연애편지이고 시인은 서비스맨입니다."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74)이 생각하는 '시'와 '시인'의 정의다.

[나태주 시인]

그는 12일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열린 신간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열림원 펴냄)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이 시대의 대단한 예술가인 척해서도 안 되고, 빗장을 잠그고 '내가 제일'이라고 해도 안 돼요. 나와서 축복해주고 위로해주는 자가 돼야 합니다."

나태주는 문학평론가 정실비가 책 뒤에 실은 '작품해설' 마지막 문장 '시인의 꽃밭에는 오늘도 문지기가 없다'를 인용하면서 "이제 문지기를 치우고 문에 있는 빗장을 떼자"고 했다.

이어 "시인은 서비스맨이라고 생각한다. 봉사하고 헌신하고 노력하고 동행해주는 사람"이라며 "중학교 아이들부터 힘들고 어렵고 지친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한테 봉사 좀 하자"고 덧붙였다.

시를 '연애 편지'에 비유한 이유는 이렇다.

"시는 러브 레터에요. 16살에 예쁜 여자에게 연애 편지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한 여자가 불특정 다수로 바뀌었죠. 연애 편지는 사랑하고 아끼고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예쁜 마음입니다. 연애 편지는 예쁘고 정성스럽고 상냥하고 곱고 겸손하게 쓰죠."

나태주는 자신을 나이 들어 '용도 폐기된 인간'으로 규정하면서도, 시를 통해 '서비스'하는 것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우리는 자갈밭에서 살아 견딜 힘이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아 내성이 부족한 것 같다. 그건 (젊은이들) 잘못은 아니다"라고 했다.

나태주가 생각하는 '좋은 시'란 어떤 걸까.

"나도 처음엔 구성과 레토릭 등이 있는 시를 썼죠. 시다운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시답지 않은 시를 쓰고 싶어요. 시답지 않은 시는 나의 시입니다. 나태주만의 아우라가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시가 진짜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나태주는 애초 시 '풀꽃'을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고자 썼는데,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풀꽃을 묘비명으로 쓰는 라스트 신이 나오는 바람에,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을 시를 다시 써야 했다고 소개했다.

새 묘비명은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이다.

신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나왔다

. 1부에 신작 시 100편을 실었고 2부에는 독자들이 사랑하는 대표 시 49편, 3부에는 시인이 아끼는 시 65편이 실렸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내년에 시인을 업으로 삼은 지 50년을 맞는다. 43년간 초등학교 교단에서 일한 그는 그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창작 시집 41권과 다수 수필집, 동화집, 시화집 등을 출간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