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스트 이태윤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밴드 '부활'과 '송골매',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까지. 한국 가요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룹을 세 곳이나 거친 정상의 베이스 연주자가 있다. 올해 데뷔 35년을 맞은 베이시스트 이태윤(55)이다.

기타리스트 김태원과는 밴드 '부활'을 만들었고, 밴드 '송골매'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에서 26년간 연주하고 있다. 그가 데뷔 35년 만에 자신의 목소리로 첫 보컬 앨범을 냈다.

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한 녹음실에서 만난 그는 "1985년 데뷔한 뒤 내 반주로 녹음한 우리나라 가요만 2만 곡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장르도 다양하다. 김동률, 임창정 같은 발라드 가수부터 빅뱅, 세븐틴, 인피니트 같은 아이돌, 최근엔 송가인까지 그를 거쳤다. H.O.T.의 '빛'과 S.E.S.의 데뷔곡 '아임 유어 걸', 조용필의 '바운스'도 그가 연주했다. 그는 "요즘엔 이선희씨의 새 음반을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세션맨으로 인기가 많다는 건 어떤 장르든 작곡가와 가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소화할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는 "아이돌 음악은 코드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에 반주하기는 의외로 쉽다"며 "재즈 화성을 바탕으로 한 신스팝이나 시티팝 유의 음악이 까다롭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음악에 대해서는 "성인 가요에 맞는 리듬감을 살려서 흥이 드러나도록 걸쭉하게 연주하는 것이 묘미"라고 했다. 올해 참여한 곡만 30곡 정도. 이전에 비해서는 70% 이상 줄었다. 그는 "아이돌 노래뿐 아니라 발라드곡도 진짜 연주 대신 찍어내는 전자음을 쓰기 시작해 일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세션맨으로 활동한 건 아니었다.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밴드 '부활'의 전신(前身)인 '디 엔드(The End)'로 데뷔했다. '부활'이란 이름도 그가 지었다. 그는 "전담 보컬 없이 두 사람이 각자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밴드였다"며 "부드러운 록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듬해엔 밴드 '송골매'에 들어갔다. 그는 "송골매에서 활동했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때"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만났을 때 배철수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 허허벌판에 있는 녹음실로 갑자기 악기를 들고 오라고 하더라"며 "나중에 보니 그게 오디션이었다"고 말했다.

'새가 되어 날으리'가 수록된 송골매 7집부터 '모여라'가 실린 9집까지 5년간 송골매에서 활동했다. 그는 "가장 밴드다운 음악을 했고 인기도 많아 매일 무대에 설 수 있던 때"라고 회상했다.

이후 조용필을 만나 26년간 '위대한 탄생'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무대를 꽉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은 조용필 목소리에 한 번, 공연마다 세련되게 편곡해 무대에 오르는 위대한 탄생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는 조용필을 "아주 무게 있고 진중한 형님"이라고 표현했다.

이태윤은 "세션맨으로 살아온 걸 후회하진 않지만 원래 꿈이 세션맨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하는, 요즘 말로 싱어송라이터를 마음에 품어왔다. 때마침 가수 김현철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는 "'김현철이 목소리가 포근한데 노래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하더라"며 "기교를 잔뜩 넣은 베이스 연주 앨범을 낼까 하다 노래를 부르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이번 앨범 '싸우지 말고'의 부제도 '노래하는 베이스'로 붙였다. 수록된 다섯 곡 전부 그가 작사·작곡했다. 그는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싸우지 말자'는 생각으로 가사를 붙였다"고 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지/왜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서로 사랑만 하기도 시간은 너무 짧아.' 이 가사에 35년간 둥글둥글하게 살아온 그의 성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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