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춘풍이 온다'[제공=국립극장]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이처럼 2010년대 초반까지 국내 송년 공연의 키워드는 '가족' '경건'이었다. 훌륭한 선택지이나 2014년부터 보기가 하나 더 늘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다. 2014년부터 5년간 총 221회의 무대를 통해 관객 18만명을 끌어 모으며 명실상부, 자타공인 '한국형 송구영신(送舊迎新)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오는 12일부터 2020년 1월26일까지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를 펼친다. '춘풍이 온다'는 '심청이 온다'(2014, 2017)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에 이은 국립극장 마당놀이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작년 초연은 연일 매진으로 객석점유율 98.7%를 기록했다.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이 바탕이다. 기생 추월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몽땅 탕진한 한량남 '춘풍'이 주인공.

어머니 김씨 부인과 몸종 오목이가 합심해서 춘풍이를 혼쭐내고 위기에서 구해내, 가정을 되살린다는 내용이다. 남편 춘풍을 영리하게 구해내고 개과천선 시키는 여중호걸의 모습은 최근 시대 흐름과도 맞물린다.

꼭두쇠는 시작에 "춘풍을 옹호하고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확실히 선을 긋는다. 못된 놈을 개과천선시켜서 사람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라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악하고 못되고 어리석은 것에서 벗어나자면 그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선보이는 것이 광대 배우들의 소임"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송년에 제격인 것은 풍자와 해학에 있다. 이야기는 옛날 배경이지만, 곳곳에 올 한해 이슈를 건드린다.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시연회에서 검찰 앞 풍경, 훈풍과 살얼음을 오가는 남북 관계 등을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밤 새 놀고 새벽에 집에 들어온 춘풍이 찾던 달(月)이 "너 때문에 초과 근무했다"고 하자 춘풍이 "벌써 52시간이 넘었나"라고 반응하는 등 억지춘향 식 막무가내로 풍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의적절 사용한다. 춘풍은 술 마시러 가면서 "일본 맥주는 안 마십니다"라며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노 재팬(No japan)'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손진책 연출과 배우들이 매일 뉴스 모니터링을 통해 올해의 이슈, 유효한 메시지를 극에 담아낸 덕분이다. 극본 김지일, 각색 배삼식이 그 이슈들의 쫀쫀하게 엮어냈다.

그렇다고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인 것에만 매몰돼 있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능수능란한 배우들과 한 판 노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뒤집어져 있던 올해가 바로 잡히고 어느새 내년을 살아갈 에너지가 충전된다.

결국 국립극장 마당놀이는 다사다난했던 올해 별 일 없었는지 안부를 묻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년에 대한 부담감을 웃음으로 떨쳐내는 자리다.

유튜브, 넷플리스 등 '쿨'한 스트리밍 시대에,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번뜩이는 아날로그로 무장한 마당놀이를 보는 행위는 우리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관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도 모자라다. 공연 시작 전 엿 사서 먹기, 길놀이, 새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고사에 참여할 수 있는 관객은 뒤풀이 춤판까지, 공연 전후에 어느새 모르게 극 속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중극장 규모인 달오름 무대 위에 가설 객석 238석을 추가 설치,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1m가 채 되지 않기도 하다.

손진책 연출 역시 "마당놀이의 가장 큰 출연자는 관객"이라고 했다. "관객의 애정과 교감이 중요한 공연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관객석에 따라 매일 다른 공연이 된다"고 마당놀이의 묘미를 짚었다.

국립창극단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춘풍 역으로 호평 받은 '국악계 아이돌' 김준수는 올해도 돌아온다. 능수능란한 유태평양이 올해 김준수와 함께 허랑방탕한 풍류남아 '춘풍'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춘풍의 버릇을 단단히 고치는 당찬 '오목이' 역에 국립창극단의 작은 거인 민은경이 새롭게 합류, 마당놀이 터줏대감 서정금과 더블캐스트로 무대에 선다. 여기에 연희 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 정준태가 꼭두쇠 역으로 참여, 관객몰이에 앞장선다.

국립창극단 김미진, 객원 배우 홍승희 등 총 34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20명의 연주자가 생생하게 라이브 음악을 들려준다. 해금으로 아기 울음소리도 낸다.

캐스팅부터 꼼꼼하게 살핀 김성녀 연희감독은 "재공연인 만큼 배우들이 지난해보다 훨씬 더 합이 좋아지고 연기가 탄탄해진 것이 보인다"라면서 "올해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당위성과 자연스러움이 더해져 한층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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