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 제공]

[서울=월드투데이] 남궁진 기자 = 서울가정법원 3층 이혼조정실 입구엔 '4인 가족상(像)'이 설치돼 있었다. 엄마와 아빠 무릎에 아들과 딸이 앉아 있는 모습의 금속 조각상이다. 1972년 설치된 작품으로 서울가정법원이 서초동에서 양재동으로 이전한 2012년 이후에도 청사를 지켜 왔다.

그런데 이 '4인 가족상'이 최근 철거돼 창고로 옮겨졌다. 지난 9월 24일 정기 간담회를 위해 가정법원을 찾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들의 지적 때문이다. 이들은 "엄마와 아빠,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데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대 서울가정법원장은 "47년 전에 설치한 4인 가족상이 요즘 가족 형태와 안 맞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년 전인 1990년에는 4인 가구가 전체 1135만 가구 중 30%인 335만 가구로 우리나라의 '표준 모델'이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4인 가구는 전체 1998만 가구의 17%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당시 9%였던 1인 가구는 2018년 현재 29.2%(585만 가구)로 가장 많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3일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로 주거 정책, 복지 정책 등 기존 4인 가구 기준이었던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가족을 혈연과 혼인으로 연결된 2인 이상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1인 가구는 애당초 가족을 이룰 수 없게 돼 있다. 특히 각종 법과 정책은 4인 가구에 맞춰져 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비 산정이나 이혼 시 지급해야 하는 양육비 산정 등은 모두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원과 혜택도 많이 돌아간다. 다자녀 가정은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고,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도 더 받고 있다.

이런 법·제도 아래에서 가족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돼 왔다. 1인 가족을 비롯해 동성혼(同性婚)이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 관계, 정식 입양을 하지 않은 위탁 가정 등이 그렇다. 이들이 사망하면 따로 유언을 남기지 않는 한 동거인 등은 상속권이 없다. 세금 감면이나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다. 출산휴가도 결혼한 사람들만 갈 수 있다.

이 1인 가구들로까지 가족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게 지금의 정책적 추세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가족 개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배인구 변호사는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가까이 있으면서 나를 보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거 관계를 인정하고 상속권을 주는 게 그 예다. 현재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으며 사실혼 인정 요건도 매우 까다롭다.

1인 가족 시대에 확산이 예상되는 제도도 있다. 조경애 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믿을 만한 사람을 지정해 자신을 돌보게 하는 '임의 후견'이나 사망 후 반려동물을 돌보는 신탁제도가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은 상속권이 없으므로 돈을 맡기는 '신탁 계약'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돌보게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가족 개념 확장에 적극적이다. 독일은 민법에서 동성혼도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서류 몇 개만 내면 되는 '팍스(PACS·시민연대협약)'라는 계약을 서로 맺으면 혼인신고 없이도 파트너 간 상속이 가능하고 세금과 보조금 등 혜택도 받는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전 세계 60여국 학자들이 모인 국제가족법학회 로고도 2013년 '4인 가족' 형태에서 어른들과 아이들 여럿이 서 있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찮다. 동성혼 인정은 종교계는 물론 국민 여론도 '시기상조론'이 우세하다. 가족 개념 확대가 법적 혼란을 가져온다는 우려도 있다. 한 변호사는 "동거 정도의 관계로 상속권까지 인정하면 혈연으로 맺어진 기존 가족 관계와 큰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월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