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의 드러머 김광학씨는 빛 한 줄기도 안 들어오는 지하에 놓인 반 평짜리 부스에서 15년간 연주를 해왔다. 그는 공연을 한 번도 못 봤지만, 이집트 암네리스 공주가 결혼 전날 밤 부르는 '아이 노우 더 트루스'가 들려오면 '울컥한다'고 했다. 작은 사진은 뮤지컬 '아이다' 중 라다메스(왼쪽)와 아이다.[사진=김광학 제공]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아이다'는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올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서울 이후, 부산 공연까지 마치고 나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전 세계 어디서도 다시 '아이다'를 볼 수 없다. '아이다'는 주세페 베르디의 동명 오페라를 바탕으로 팝스타 엘턴 존과 팀 라이스가 노래를 만든 작품. 2000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첫해, 토니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김광학(49)씨는 "아이다 공연 중단을 결정한 제작사 디즈니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공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 1000여 명 중 단 1회의 공연도 빠진 적 없는 드러머다. 오디션과 연습에도 매번 참석해서 출석 일수로만 따지면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

김씨는 "혹시 교통사고라도 날까 봐 제자 중 한 사람에게 연습을 시켰지만, 아직까지 제자를 부른 적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를 지키다가 막이 오르는 시간에 공연장에 다녀왔어요. 한 번은 목디스크 때문에 팔이 올라가지 않길래 아예 드럼 세트를 올려서 쳤죠. 독하다고요? '아이다'는 완벽한 드라마를 가진 작품이라서 누구한테도 주기 싫었거든요(웃음)."

뮤지컬 공연장에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pit)는 무대 앞의 바닥을 낮춰서 설치된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고 피트에 다가가야 오케스트라 단원이 보인다. 하지만 '아이다'의 피트에 가도 김씨는 볼 수 없다. 그는 피트보다 한 층 더 아래 있는 지하실 반 평짜리 부스에서 혼자 드럼을 친다. 드럼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피트가 반지하방이라면, 그가 있는 곳은 지하주차장 같은 곳으로 공연장과 완전히 격리됐다. '아이다'는 2005년 개막 첫 공연부터 지난 16일까지 총 772회 막을 올렸고, 김씨는 772회 공연에서 드럼을 쳤지만, 눈앞에서 이 공연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휑한 곳에서 혼자 연주하려니까 처음에는 속상했는데, 드럼 연주 말고 다른 역할도 해야 하니까…. 저만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피트와 무대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을 모니터로 보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맡고 있어요. 음악 감독이었던 박칼린이 지휘하다가 쓰러졌을 때 이를 알린 것도 저였으니까요."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드럼 스틱을 쥐었다. KBS관현악단에서 드럼을 치던 작은아버지에게 배웠고, 18세에 '업계'에 들어갔다. 방송국이나 밴드, 나이트클럽, 호텔 디너쇼에서 연주했고, 그룹 코리아나, 빛과소금, 가수 이은미, 박상민 등과 함께 작업했다.

1992년 동대문의 한 카바레에서 연주 의뢰가 들어온 날, 서울예대에 다니던 여자친구가 학생 뮤지컬 공연 '가스펠'에서 드럼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대신 여자친구를 택했고, 그 뒤로 뮤지컬의 세계로 빠졌다. 1998년 '남자 넌센스'를 시작으로 '미스사이공' '시카고' '렌트' '헤어스프레이' 등 뮤지컬 공연에만 참여했다. 그를 뮤지컬로 이끈 여자친구와는 결혼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아이다'의 음악을 연주했지만, 그는 공연 한 달 전부터 연습한다. "악기 연주도 스포츠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계속 단련하고 몸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한 번도 연주를 빠지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연주를 못 하게 될까 봐 걱정한 적은 있어요. 연주할 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공연이 없을 때 스트레스를 좀 받죠. 내년 4월 '아이다'의 마지막 공연에서는 엉엉 울면서 드럼을 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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