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 이냐구요?'[사진=권윤희 기자]

[서울=월드투데이] 권윤희 기자 = 전통적인 모성애 강조 등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 하는 광고들이 여전히 노출되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광고에 대한 규제 마련은 물론, 성적 대상화 등을 '차별'이라 인식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 서울YWCA 다목적실에서 열린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 : TV·유튜브 광고 속 성차별부터 페미니즘까지 논하다' 토론회에서 'TV·유튜브 광고 속 성차별 분석' 결과를 발표한 황경희 서울YWCA 간사는 "2019년 한국의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광고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YWCA가 TV 광고 1차 381편(3월 25일~4월 14일)과 2차 482편(8월 24일~9월 24일), 유튜브 524편(10월 1일~31일)을 모니터링한 결과 TV 광고에서는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사례가 가장 많이 발견됐으며, 유튜브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 하는 광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TV 광고의 출연자 성비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1·2차 모두 여성은 44%, 남성을 56%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이 등장했다. 그중 정보통신, 자동차·정유 분야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많이 등장했으며, 화장품과 아파트·건설 분야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많이 등장했다. 특히 2차 모니터링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3배 많이 등장한 아파트·건설 분야(15명, 75%)의 경우 전통적인 성역할에 입각해 가족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모습을 강조한 광고가 8편 중 3편을 차지했다.

주요 등장인물의 역할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가사는 여성의 몫, 돈 버는 일은 남성의 몫이라는 성차별적 재현이 광고에서도 여전히 반복됐다. 2차 모니터링 결과 아이 돌보는 역할로 등장한 7명 모두 '여성'이었으며, 가사 일을 하는 역할은 7명 중 여성이 6명을 차지했다. 반면 '일해서 돈 버는 사람'은 남성이 전체의 67.3%인 80명은 차지했고, 여성은 39명(32.7%)에 그쳤다.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 서울YWCA 황경희 간사는 "여성 역시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 진출하고 생산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고정하면서 여성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덧붙이고 있는 현실을 공고히 한다"고 비판했다. 

유튜브 광고에서 발견한 성차별적 광고 32건 중 11건은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등 성적 대상화 한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게임이나 어플리케이션 광고에서 여성을 노골적인 대상화 했다.

황경희 간사는 "유튜브 광고는 TV 광고에 비해 성차별적인 내용이 훨씬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며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유튜브 광고의 특성상 특히 게임과 관련한 콘텐츠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될 거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김수아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광고가 변화하는 사회와 성역할 고정관념, 성차별 인식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으며 "광고주나 광고제작자 입장에서 여자에게 강인함 등 남성성을 갖게 하는 것이 남자에게 부드러움 등 여성성을 갖게 하는 것보다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편견이 작용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덴마크,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등 해외의 성차별 광고 규제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영국의 성차별 광고 규제에 따르면 지난 7월 '아동 성 상품화' 논란을 일으켰던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 광고는 영국에서는 방송될 수 없다. 해당 광고는 어린이 모델에게 풀 메이크업을 시키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클로즈업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영국 광고기준 위원회는 지난 2018년 '유해한 성별 스테레오타입 광고'를 금지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청소년의 성역할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고,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광고 이미지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얼굴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다거나, 신체 일부만을 부각하는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 '성적 대상화'로 본다. 이는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한국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광고심의규정에 일반론적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08년 방송광고에 대한 사전 심의가 위헌으로 판결 난 후 방송사는 사전에 자율적으로 심의를 하고, 광고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사후심의를 받는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편도준 실장에 따르면 특히 규제 사각지대에 위치한 '유튜브'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방송 불가'로 판정한 광고가 유튜브에서는 버젓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유튜브 광고를 위해 선정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편 실장은 "아무도 손을 못 대고 있는 유튜브와 인터넷 쪽은 사각지대고, 더 심하게 말하면 '무법지대'다. 유튜브 등 인터넷, 모바일 광고에 대해서는 사전·사후 어떤 기능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관련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 실장은 차별 광고에 대한 논의와 연구 결과가 현장에 적용되기 위한 효율적 시스템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산재해 있는 광고규제의 컨트롤타워와 사전자율심의의 구심점 부재가 큰 문제다. 문제 광고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민간 자율심의, 특히 사전자율심의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규제 마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박정화 인디CF 대표는 "마케팅 콘텐츠 모든 요소,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도 돈을 주고 결정하는 광고주에 의해 결정된다. 그만큼 광고주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며 "광고의 목적은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인 만큼 광고를 바꾸고 싶으면 그 광고로 돈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투표라 생각한다. 현명한 소비자가 기업을 가르칠 수 있고,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FDSC) 소속 우유니게 디자이너는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상상'이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여성을 대상화한다. 여성을 '그냥 사람'으로 바라보고, 외모·연령·직업·행동 양식·착장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성'이다. 여성 광고기획·제작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간다면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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