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월드투데이] 유필영 기자 = "적명 스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가시다니. 산승은 말문이 막히고 산하대지도 말문이 막혀 오열하고 있습니다“

28일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는 적명 스님의 영결식이 치러졌다[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산행 도중 사고로 세상을 뜬 한국 불교 대표 선승인 적명 스님의 영결식이 28일 치러졌다.

이날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는 사부대중(四部大衆)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의 영결식이 봉행됐다. 봉암사는 스님이 수좌(首座)로 지냈던 곳이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대원 스님은 "아직 간화선이 한국과 세계화로 정착되지 못해 더 많은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한 때 대종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너무 안타깝고 한스럽다"라고 애도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도 추도사를 통해 "생사와 별리의 경계를 마땅히 넘어서야 하지만 이렇게 큰 스승을 보내야 하는 마음은 허허롭기 그지없다"라고 추모했다.

적명 스님, 세상 마지막 길[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이 자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대종사,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호영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도 참석해 적명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영결식에 봉암사 연화대에서 다비식(茶毘式)이 치러졌다.

다비식은 죽은 이의 시신을 불태워 유골을 거두는 의식이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스님의 법구(法軀)를 인근 연화대로 옮겼다.

28일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는 적명 스님의 화장의식인 다비식이 열렸다[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약 2m 높이로 나무와 숯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 화장장에는 법구가 안치된 뒤 불이 붙어졌다.

희뿌연 연기를 내며 나무가 타들어 가자 스님의 육신도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1939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후 출가했다.

1966년 해인사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7년 당시 성철 스님이 방장에 추대돼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가행정진(加行精進)에 들어갔고 이후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

해인사와 통도사, 백양사, 수도암, 전국 수좌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참선 수행도량인 봉암사에서 사찰의 큰 어른을 뜻하는 조실 요청을 마다하고 수좌로 지낸 일은 유명하다.

지난 24일 스님은 사찰 뒤편 희양산에 올랐다 일행과 떨어졌다.

이후 스님은 산중 바위 아래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숨은 멎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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