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무혐의 당사자 특정될 사진 올려 정신적 고통 줘"

[서울=월드투데이] 박희숙 기자 = "강제추행 당했다"라며 직장 상사를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분되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동참, 해당 글을 게시한 여성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라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무혐의 처분된 당사자가 특정될 만한 사진을 게시하면서 단서를 제시했고 이 같은 상황에서 미투 운동 동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5일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2015년 직장 상사 B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입사 직후 B 씨가 사무실과 옥상, 차 안 등에서 자신을 10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했다는 내용이다.

A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퇴사했고 B 씨도 곧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했다.

A 씨가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A 씨는 2018년 인터넷 게시판에 '강제추행 당했다'라는 글과 '수사가 불공정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B 씨의 명찰과 얼굴 부분만 지운 사진을 여러 장 첨부했다.

B 씨 지인의 SNS에 얼굴을 지우지 않은 사진을 그대로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게시판에 "미투 저도 고백합니다…"며 강제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이에 B 씨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 A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 씨가 허위사실을 공표해 명예가 훼손되고 회사도 다닐 수 없게 됐다"라며 "2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A 씨 역시 강제추행을 주장하며 "위자료 3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맞소송을 냈다.

1심 소송에서 B 씨가 일부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는 B 씨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라"라고 선고했다.

A 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 씨의 2천만 원 청구도 함께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 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는데도 A 씨는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게시하면서 B 씨가 특정될 만한 사진을 첨부하고 단서를 제시했다"라고 밝혔다.

A 씨는 이에 대해 "미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B씨를 경계하라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위법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체 접촉이 A 씨의 의사에 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법적으로 성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A 씨도 알고 있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서는 "직장 상사인 B 씨는 막 입사한 A 씨에 대한 언행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도 다소 부적절하게 처신, 고소와 글 게시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위자료 액수는 300만 원이 적정하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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