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경의 '시선'] 죽음의 선거구, 사즉생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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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의 '시선'] 죽음의 선거구, 사즉생의 한 수
  • 윤태경 기자
  • 승인 2020.02.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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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 본부장
▲윤태경 본부장

4월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가 ‘핫’한 선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종로구는 청와대와 조선 시대 왕궁인 경복궁이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정치 1번지다. 그런 만큼 대선주자급 후보들이 많이 출마한 지역구다.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등 대통령도 3명이나 배출했다. 유력인사들의 경연장인 종로구에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지난주 말 종로구 출마 선언을 했다.

두 사람은 국무총리를 역임한 여·야의 차기 유력 대권 주자다. 사실상 대선전초전이다. 한 명만 당선되는 구조이기에 두 명 중 한 명은 낙선한다. 낙선하면 대권도 물 건너갈 수 있다. 이른바 죽음의 선거구다. 월드컵 등 국제경기에서 유력 우승국이 한 조에 배정받을 때 ‘죽음의 조’로 불린다. 월드컵 등의 ‘죽음의 조’는 추첨이지만 종로 대첩은 각자 자유의지로 선택했다.

종로구 이외 험지 출마를 저울질하던 황교안 대표가 종로구로 결정한 것은 당락을 떠나 매우 잘한 선택이다.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비례대표로 안주했다면, 초선 국회의원 자리를 탐한 사람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몸을 던져야 할 때, 솔선수범해야 할 때 몸을 사리는 사람을 지도자로 예우하거나 받들 사람은 없다.

종로구는 현재 상황만으로 볼 때 황교안 대표에게 많이 불리할 수도 있다. 양자 가상대결에서 더블스코어로 뒤지고 있다는 일부의 여론조사도 나왔다. 대선후보급 여론조사에서도 이낙연 전 총리에 비해 많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황교안 대표에게 종로구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 대표에겐 명분이 매우 높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고위험 고수익)’이다. 이기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보수진영의 대선주자급으로 우뚝 설 것이다. 지더라도 여운을 남기거나 감동을 남기는 패배를 한다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도 있다.

종로구를 배경으로 입지를 확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은 명분 있는 총선 패배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년 전인 2000년 총선 때 험지인 부산 북구·강서구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당시 부산은 막대기도 꼽으면 당선된다던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다. 당선자는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였다. 그 후 허태열은 3선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8년 서울 종로구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돼 2000년 16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으로 출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구도 타파’ 명분을 내세워 험지인 부산 출마를 선택했고 낙선했다.

당시 ‘노무현 대 허태열’ 선거는 거물급 대 신진급 대결로서 경륜과 인지도면에선 많은 차이가 났다. 노무현은 ‘88년도 국회청문회 스타, 말 잘하는 정치인, ‘95년 초대 부산시장 낙선자(37% 득표), ’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 당선, 집권 여당 부총재 등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반면 허태열은 관선 충북도지사를 역임한 야당 원외 위원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허태열 53%(4만 표), 노무현 36%(2만7천 표)였다. 노무현 후보가 허태열 후보에게 17%(13,000표) 차이로 대패했다.

총선 패배 후 노무현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더 살아났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무모하리만큼 도전한 그의 정신 때문이었다. 일부에선 아름다운 패배라고 했다. 총선 패배가 계기가 되어 든든한 후원자이자 백만원군 역할을 해준 노사모가 태동했다. 그 후 그의 모험과 도전정신의 진정성을 당원들에게 인정받아 대통령 후보에 이어 대통령까지 당선됐다.

지난해 연말 황교안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이회창 전 총리의 공천 모델을 배워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분이 완전히 성공한 분은 아니라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지만, 총선 승리를 이끈 모델을 배울 수는 있다고 본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회창 전 총리는 2000년 16대 총선 공천 시 정치생명을 건 모험과 승부수를 던졌다.

국민은 그의 단호한 결단을 ‘한나라당을 제1당 만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후 이회창은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 제1야당 총재이자 부동의 1위 대선주자였다.

선거한달 전 노무현·정몽준의 전격적인 후보 단일화 이벤트만 없었다면 이회창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이회창은 4년 내내 이기다가 선거 한 달 전에만 졌고, 그것이 대선 패배로 연결되었을 뿐이다. 황교안 대표의 이번 결단은 이회창식 결단에 견줄만 하다.

황교안 대표가 정치권 입문 이후 제대로 보여준 것이 뭐가 있느냐라고 일부에서 혹평하기도 한다. 삭발, 단식, 장외투쟁 등 강경 이미지도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선거법, 공수처법을 막지 못한 정치력 부재 논란도 있었다.

황교안 대표의 종로구 출마 결정은 이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사즉생의 잘 내린 한 수’로 보인다.

윤태경 기자    songinmo50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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