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살아있는 언어유희, 아포리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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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살아있는 언어유희, 아포리즘의 향연
  • 정길화 편집위원
  • 승인 2020.04.1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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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2020),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 마음서재

 

정길화(MBC PD, 언론학 박사)
정길화(MBC PD, 언론학 박사)

1993년의 글이니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의 일이다. 월간 MBC가이드에 연재된 <연출가의 세계> 주철환 편에서 그의 면모를 천착한 적이 있다. '주철환적'이라는 말이 '방송계에서 신선함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으로 통하고 있다는 바, 그 내용을 톺아본 것이다. 가로되,

" '주철환적'인 것은 무엇인가. 우선 탁월한 언어의 조탁(彫琢)을 들 수 있다. 모국어에 대한 그의 식견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이런 능력은 언어의 조립, 말을 통한 의미의 전달이나 기쁨의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말을 통한 재미의 개발은 그의 강점이다. 두 번째로 그의 음악적 소양이다. <모여라 꿈동산>, <같이 사는 사회>, <퀴즈 아카데미> 등 그가 맡은 프로그램에서의 로고송, 테마송은 작사에서 작곡까지 그의 작품이다. 그의 프로그램엔 음악적 감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한 유려한 음악적 흐름이 있다.

이상은 그의 프로그램 도처에 발견할 수 있는 정채(精彩)다. '주철환적'이라면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굵다란 스케일 보다 작고 아름다운 세계의 구현, 순박한 것이나 때묻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 부여 등은 '주철환적'인 것의 핵심이다.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촉각은 보편성과 대중성을 향해 늘 열려 있다... "/정길화(1993) <MBC가이드> '연출가의 세계' 주철환편 발췌 및 재구성.

이후 그의 행보는 학계(이화여대)와 방송경영(OBS 사장)과 대PD(JTBC)를 거쳐 서울시의 문화 관련 기관장(서울문화재단)을 역임한 이후 다시 학계(아주대)로 돌아와 있다. 이즈음은 ‘노래채집가’를 자임하며 일간지에 '주철환의 음악동네'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이 칼럼은 27년 전 고증했던 주철환적인 에센스 즉 언어의 조탁, 음악적 감성이 이미 원숙한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음악에서 문학적 에스프리와 서사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한국 대중음악사를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하는 것이 그의 노래채집 활동이다. 이 칼럼의 연재가 끝나 책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팬서비스라도 하듯 주철환 교수는 얼마 전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2020, 마음서재)를 출판했다. 저자의 16번째 저서인 이 책 역시 철두철미하게 ‘주철환적’인 책이다.

(사진=정길화)
(사진=정길화)

책 제목인 ‘재미있게’와 ‘의미있게’의 배열에는 각운(脚韻)이 살아 있다. 일찍이 1993년 ‘연출가의 세계’에서 고찰한 바 있듯, 저자가 즐겨 쓰는 언어유희(pun)다. 그러나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라 삶의 깊은 통찰에 기반하고 있는 철학적 에세이 혹은 프로포(propos)다. ‘실력은 시력에서 나온다’, ‘희망을 주면 보복 대신 보답이 온다’, ‘동요, 동심, 동안’, ‘좋은 상상은 현실로 만들고 나쁜 상상은 대비해야 한다’, '돌아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순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사람은 살아야 할 방향을 지목한다’ ... 등등 이 책에도 주옥같은 글월이 이루 예거할 수 없이 나온다.

그의 라임(rhyme)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기록하고 일기를 쓰는 습관, 매사에 관찰하고 성찰하는 탁마의 결과다. 새벽 4시에 정갈한 마음으로 글을 다듬는 성실함의 소산이다. 만약 누군가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를 사서 ‘밑줄 쫙, 별표 땡’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필경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긋고 별표를 쳐야만 할 것이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장원급제한 답안지처럼 그야말로 "자자이 비범(批點)이요 구구이 관주(貫珠)로다"에 해당한다. 가지고 다니며 아껴서 저작(咀嚼)해야 할 텍스트다.

그가 말했듯,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이 쓰기 때문이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리운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불러내고 싶은 것이 많아서다” 가슴을 치며 탄복하는 이 아포리즘(aphorism)의 항연은 작금 코로나19의 시름을 벗어나게 하는 황홀한 파티다. 책 말미 '내 인생의 추수감사절' 대목을 음미하려는데 올해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정년이란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청년”이라며 마지막으로 특유의 라임을 확인사살(?!)한다.

 

정길화 편집위원    yo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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