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구호차량 약탈 ‘무법천지’… 인구집중·부실주택이 재앙 키워

▲ 탈주민들이 몰려 공항은 마비가 됐다.

[월드투데이 = 김시연 기자]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필리핀 중부 레이테 섬 타클로반에선 12일에도 생존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됐다.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참사 닷새째 날까지 교통·통신 단절로 구호작업이 순조롭지 못했다. 극단에 몰린 일부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하러 상점 등을 약탈하기도 했다.
사실상 무법천지로 변한 시내에서 사람들이 상가를 닥치는 대로 터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 가게 주인은 “식량만이 아니라 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까지 쓸어갔다”고 하소연 했다.
구호품을 실은 적십자사 소속 차량까지 일부 습격 당한 것으로 알려지자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는 상점을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한 점주들이 점포를 지켜 내전을 방불케하고 있다.
이밖에 치안 부재를 틈타 600여명이 수감된 타클로반 교도소에서 일부 죄수들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 필사 탈출행렬 줄이어 = 12일 타클로반 공항에 필리핀 군용기 2대가 착륙하자 3000여명이 삽시간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빗속에서 아기 엄마들은 머리 위로 자식들을 치켜 올리며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호소했다. 한 30대 여성은 “군인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당뇨병을 앓는 내가 공항에서 이대로 죽길 바라는 거냐”라며 울부짖었다.

▲ 구호품을나눠주는 센터 물품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
이런 아수랑이 곳곳에서 연출되자 11일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던 필리핀 당국은 군과 경찰력을 증강 배치했다. 마닐라 스탠더드 투데이에 따르면 11일 경찰 특별기동대 883명이 타클로반·오르모크 등지에서 치안 확보에 나섰다. 비사야스에는 군 병력 500명이 급파돼 도로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또 강가에 방치된 시신들이 식수를 오염시키면서 420여만 이재민들을 더욱 절망케 하고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 관계자는 “수질 오염으로 인한 전염병이 생존자들을 다시 사지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리핀 국가재난감소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2일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가 1744명, 부상자가 2487명이다. 그러나 레이테 섬에서만 사망자가 1만명으로 추정되는 등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크다. 사마르 섬에서도 400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동사마르와 세부에서도 각각 162구, 63구의 시신이 확인됐다.
이 같은 대 참사가 일어난 것은 필리핀인들의 정부 불신이 첫 번째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구호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미 국방부는 12일 필리핀에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약 5000명의 병력과 구축함·순양함·잠수함·함재기 80대로 구성된 조지워싱턴호는 주둔 중인 홍콩을 떠나 이르면 14일 필리핀 현지에 도착한다. 미 국제개발처(USAID)도 구호·복구작업에 2000만 달러(약 214억원)를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인근 싱가포르에 정박 중인 함정 1척을 피해지역에 급파하는 한편 복구장비 공수 등을 위해 C-17 화물기 파견도 추진하고 있다. 유엔은 응급 의료품과 식수, 위생설비 지원 등에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200만 달러의 재해대응기금을 집행키로 했다.반면 최근 필리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은 1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지원금을 내놓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만약 중국이 (영해 갈등 중인) 필리핀을 돕는다면 중국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촉발될 수 있다”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자의 말을 소개했다.
▲ 우리정부 차원 지원보다 구호단체의 지원이 먼저 이뤄졌다.
◇ 우리정부 차원 지원 외에 구호 단체 지원 시작 = 우리 정부도 e국가적인 대대적인 구호를 나설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먼저 한국 구호단체들의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정정섭)은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 중남부 지역에 긴급구호팀을 보냈다.
앞서 기아대책은 지난 9일 필리핀 남부 레이테섬에 있던 현지 봉사단원 3명을 1차로 파견하고, 다음날 긴급구호 기금 5만 달러(5300여 만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이날 오전 긴급구호 담당자와 기아봉사단원 등 2명으로 구성된 2차 긴급구호팀을 현장에 보냈다.
이들은 필리핀 기아대책과 마을 주민, 지역 공무원 등과 협력해 긴급 식량과 구호 물품 등을 전달하고 지역 재건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이진호 기아대책 기아봉사단원은 “현지 피해 상황이 심각하지만 인근 지역에 다른 구호 단체가 없다”며 “빠른 대처를 위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한적십자사도 대국민성금모금과 함께 의료단 파견을 논의 중이다.
적십자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긴급구호 자금으로 5만~1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어 국제적십자연맹의 지원 요청에 따라 성금 모금과 의료단 파견 규모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국제적십자연맹은 5억5000여만원을 긴급구호 자금으로 지원했다.
유니세프도 지원사격에 나선다. 의료단이나 구조단을 보내지는 않지만 기금 모금을 통해 필리핀을 돕기로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도 내부 회의를 거쳐 기금 모금을 준비 중이다.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소도 본부에서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긴급 구호팀을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앞서 국경없는 의사회 본부는 지난 9일 태풍 피해를 입은 필리핀 세부에 긴급 구호팀과 의약품 등을 지원했다.
▲ 거리는 약탈자들로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무법천지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피해 수습을 돕기 위해 구조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소방방재청은 외교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오면 중앙119구조본부 국제구조대원으로 구성된 구조단을 꾸려 필리핀 현지로 파견한다. 구조견과 각종 탐색장비도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이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아이티 지진 피해 당시에도 현지에 구조단을 파견, 구조활동을 펼쳤다.
한편 AP통신 등에 따르면 필리핀은 이번 태풍으로 인해 1만2000여명이 숨지고 도로와 건물 등이 파괴돼 15조여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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