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기에 어머니가 있게 하였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중보기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의 어머니는 5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남긴 말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평생을 고생만 하신 어머니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이 감사였다는 것은 어머니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 준다. 어머니는 평생토록 기도하시는 어머니였다.

일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고작 재봉틀 한 대였다. 그 재봉틀로 삯바느질 하시며 우리 4남매를 대학까지 나오게 하셨다. 나는 철들기 전부터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기도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곤 하였다.

내가 남양만에서 농민목회를 하던 때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때 농가들의 소득을 높이고자 교회가 앞장서서 양돈단지, 젖소단지 같은 부업단지를 만들었다. 그러다 경영의 미숙으로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빚에 쪼들리게 되자 당연히 대표인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아들 목사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1월 달 추운계절에 금식기도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러시는 어머니가 염려되어 "어머니 이런 엄동설한에 금식하시면 몸 상합니다. 건강을 위해 금식기도를 멈추세요"하고 간곡히 권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늙은 어미가 아들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외에 더 있느냐"하시며 금식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러시기를 5일째에 이르러 새벽기도를 마친 후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시고는 이르시기를 "김 목사야 내가 오늘 금식을 마치기로 하였다" 하시기에 "무사히 마치셔서 감사합니다"고 하였더니 어머니께서 이르셨다.

"내가 오늘 금식을 마치게 된 것은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궁금해진 나는 어머니 어떤 음성을 들으셨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대답하셨다.

"아들 목사가 지금은 어려우나 42살이 지나면 괜찮느니라"는 음성을 들으셨노라 하였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긴가민가 의심이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 42세가 지나고 43세가 되는 1월부터 모든 어려움이 순탄하게 풀리고 좋은 일들이 거듭 이어졌다. 그제야 '그때 어머니께서 아들을 위해 목숨 걸고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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