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디오 쇼에 출품된 195개의 브랜드 중국내 메이커는 오라 노트를 만든 에이프릴 한 군데밖에 없었다."

[월드투데이]<글 : 이종학 내외신문 편집위원> 그간 수도 없이 도쿄를 다녀왔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을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내게 있어서 도쿄의 이미지란, 약간 쌀쌀하면서 우수에 찬 모습이다. 영어로 하면 “그레이”(grey) 하다고나 할까?

특히 신주쿠의 높은 오피스 빌딩이나, 잿빛이 감도는 거리의 칙칙한 분위기 거기에 가랑비까지 조금 내리면 영락없이 기분까지 그레이해진다. 심하게 우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뻐 날 뛰는 모습과는 영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을, 도쿄 나들이가 좀 더 특별해졌다. 바로 도쿄 오디오 쇼 때문이다. 도쿄역 부근에 소재한 국제 포럼 빌딩에서 매년 가을마다 행해지는 이 이벤트는, 한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디오 쇼로 자리잡은 적도 있다. 지금도 수많은 관람객들의 조용한 열기와 숱한 외국 디자이너, 마케터들의 러쉬는, 이 행사의 화려했던 순간을 기분 좋게 회상하게 만든다. 더불어 오디오업계에서 아직 일본의 힘이 대단하다는 점도 아울러 깨닫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이벤트를 매우 좋아한다. 도쿄야 뭐 내게 특별할 것도 없는 도시지만, 오랜 기간 방문하면서 쌓은 정분이 있는 데다가, 이런 행사가 갖는 상징성 같은 게 있어서 한 해라도 건너뛰면 어딘지 모르게 섭섭한 기분이 된다. 한 마디로 올해도 도쿄에 와서 쇼도 보고 라멘이며 스시를 먹고 가는구나, 라는 느낌.

 사실 이번에는 꽤 오랜 만에 방문했는데, 다른 쇼에서 봤던 인물들이 대거 모습을 보였다. 간단하게 브랜드로만 소개해도, 오디오퀘스트, 노도스트, 프라이메어, YG 어쿠스틱, 크렐, 비엔나 어쿠스틱(참고로 여기 마케터와는 나중에 시부야에 있는 타워 레코드에서 또 만났다.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다), 볼더, 컨스텔레이션, 오디오 마시나, 비비드 오디오 ... 정말 그 리스트는 끝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일종의 의식처럼 꼭 방문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메인 행사장을 구름다리로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부스다. 여기에 바로 오라 노트가 있다. 이번에 새 버전이 나온 만큼, 그 음도 궁금했고, 참관객들의 반응도 알고 싶었다. 행사 첫 날, 한 걸음에 우선 가보니 바로 그 자리에, 언제나처럼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줬다.

 사실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나는 오라 노트를 봤다. 유럽에선 뮌헨 쇼 외에도 이를테면 취리히의 한 레코드 점에 진열된 모습이라던가, 프랑크푸르트의 오디오 숍의 중앙에 당당히 진열된 모습이라던가 ... 암스테르담의 화려한 야경에 취해 캐널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본 진열장 너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모습이라던가 ... 또 홍콩에서 본 적도 있고, 싱가포르도 있으며, 도쿄는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제품이 응당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 이벤트의 특별한 부스인 것이다.

 

 참고로 이 룸엔 오라클, 오르페우스, 엘락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모여 있고, 그 가운데 당당히 오라 노트를 비롯한 에이프릴의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엘락과 오라의 조합은 현지에서도 일종의 공식처럼 알려진 듯, 항상 함께 나온다. 외관상 잘 어울리는 듯해서, 굳이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오라 특유의 투명하면서 분해능이 높은 음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이번에도 유심히 들어봤는데, 보다 하이파이적인 느낌이랄까, 아무튼 훨씬 진보한 면모를 보여줬다. 쉽게 스피커를 구동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모습에서 난 한 가지 컨셉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과 연구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내공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관람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온 분들이 흥미롭게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기기 옆에서 나란히 사진 찍는 모습은, 이 제품의 높은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렇게 흐뭇한 기분은 바로 국제 포럼 옆에 있는 빅 카메라라는 전자 제품 전문점에서도 이어졌다. 제목에 카메라가 붙어서 카메라 전문점같지만. 실은 이 체인은 전자 제품이라면 장르 불문, 가격 불문 몽땅 취급한다.

 

 마침 점심도 먹고, 가볍게 기분 전환이 필요해 들어섰더니 정말로 현란한 제품들이 나를 반긴다. 각종 스마트 폰부터 냉장고, 세탁기, 와인 셀러, TV, 에어콘, 믹서기, 청소기 ... 사실 나는 이런 제품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중간에 어느 사케 시음 코너도 있어서 서 너 잔 걸쳤더니 가벼운 취기가 몰려왔다. 새벽잠을 설치고, 제트 기류로 심하게 떠는 비행기를 타고, 게다가 나리타에서 도쿄역에 이르는 긴 여정이 겹쳐 어디 잠시 쉬고만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오디오 코너가 눈에 띄었다. 천천히 다가가 보니 몇 개의 브랜드로 집중된 모습이 감지되었다. 스피커로 말하면 JBL에 B&W 그리고 탄노이 정도가 전부였고, 앰프는 마란츠, 데논, 야마하 등 일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한쪽에 오라 노트가 반갑게 나타났다. 와우, 이거 참 대단하구나 탄성이 절로 나왔다. 판매원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사실 이런 오디오 코너는 일반 시민들이 그냥 머리에 떠올리는 유명 상표에 따라 구매하는 곳이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의 전문적인 메이커들이 감히 들어올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오라 노트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내 일처럼 반갑고, 우쭐해졌다.

 

 물론 여기에 있는 모델은 3년 전에 나온 구버전이다. 정식으로는 오라 노트 프리미어. 최근작은 이제 런칭되었기에 이곳에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제품이 제일 좋은 자리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신선하고 또 고무적이다.

 이 가을, 새롭게 버전 업 된 오라 노트의 존재감은 상당히 묵직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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