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호주 무역 및 외교 분쟁 심화
다윈항 둘러싼 美·中 패권 다툼이 '본진'
친미(親美)로 전략적 전환환 호주

[사진=월드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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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투데이 한진리 기자] 최근 국내외 경제를 관통한 뜨거운 이슈를 딥-다이브(deep-dive) 해보는 경제 deep, 여섯 번째 주제는 중국과 호주의 얽히고설킨 관계다.  

◆  'power outage' 어둠에 잠긴 중국 

중국이 10년 만의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홍콩 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은 지난달 28일부터 1일까지 나흘 연속 전력 부족 경보가 발생해 도시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대규모 정전 사태로 신호등, 아파트 승강기가 갑작스레 작동을 멈추면서 휴대폰 플래시를 키고 생활하는 주민들의 실태가 보도되기도 했다. 

제조업 셧다운 압박도 커지고 있다.

중국 31개 지방정부 중 16개 지역이 전력 사용을 제한하면서 애플, 테슬라 제품을 납품하는 공장을 비롯해 상당수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기, 포스코가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북동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한 식당에서 지난달 29일 한 손님이 정전으로 스마트폰 손전등을 사용해 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중국 북동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한 식당에서 지난달 29일 한 손님이 정전으로 스마트폰 손전등을 사용해 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최근 극심해진 중국의 전력난은 호주와의 무역 및 외교 분쟁에서 기인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화력 발전 의존도가 60% 이상인 세계 최대의 석탄 소비국이다. 매년 약 3억t의 석탄을 수입하는데, 이 중 약 3분의 1 가량을 호주에서 들여온다.  

호주는 석탄을 비롯해 철광석, 보크사이트 등의 원자재를 중국에 수출한다. 그중 석탄은 1㎏ 당 5500㎉ 이상의 열량을 낼 수 있는 고품질로 타국(러시아, 몽골, 인도네시아)의 석탄보다 수요가 월등히 높다. 

그런데 중국이 올해 호주의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한 후 전력 부족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흔들리자 석탄,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때 둘도 없는 우방국이었던 두 나라가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과 호주의 분쟁을 형상화한 그래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과 호주의 분쟁을 형상화한 그래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갈등의 발단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지난해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미국·프랑스·영국·독일 총리에게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적인 독립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스콧 총리의 발언은 코로나19의 '우한 기원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호주는 이후 화웨이의 5G(5세대 이동통신) 사업 참여를 금지하며 반중(反中)행보를 본격화했다. 

중국은 격분했다. 관영매체를 동원한 중국이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껌"이라고 비난하며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자 두 나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먼저 중국은 호주산 제품을 향한 대규모 무역 규제를 시작했다. 소고기 수입 규제를 시작으로 보리 80.5%, 와인 200% 가량의  반(反) 덤핑 과세를 부과했고 랍스터, 석탄, 목재, 구리 등 호주의 주요 수출 품목을 잇달아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하며 강력하게 압박했다.

호주도 반격에 들어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의 관세 조치가 부당하다고 공식 제소하며 맞불을 놓은데 이어 지난 4월에는 빅토리아 주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파기하며 중국에 '어퍼컷'을 날렸다. 

[호주 북부에  위치한 다윈항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호주 북부에  위치한 다윈항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진짜'는 다윈항 둘러싼 美-中 패권 전쟁

두 국가의 대립은 단순히 호주의 반중 행보 때문만이 아니다. 기저에는 '다윈항(Dawin port)'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알력 다툼이 깔려있다. 

지난 2015년 11월 호주 노던준주 정부는 중국 랜드브릿지 그룹과 다윈항에 대한 99년 임차권 계약을 맺었다. 해당 계약은 5억6천만 호주달러(4천2백억원)로 체결됐다. 

랜드브릿지는 중국의 억만장자 예청이 소유한 란차오그룹 산하 기업이다. 예청은 중국 공산당 군부 출신 인물로, 사실상 중국 군부가 다윈항을 99년간 임차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계약 체결 이후 호주 내부에서도 '중국의 속국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기도 했다. 

호주 북부의 관문인 '다윈항'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전략적 요충지다. 조용한 항구 도시이지만,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입구이기에 지정학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과 영국이 격돌했던 장소다. 영국군은 다윈항을 동남아 진출을 위한 거점 기지로 삼고 주둔 중이었는데, 이를 저지하려던 일본이 전투기 수백대를 동원한 대대적인 공습을 펼쳤다.

무방비였던 영국군과 호주는 대패했다. 다윈항은 그 뒤로도 일본에게 60차례 이상 공격 당하며 지난한 싸움을 이어갔다.

[호주 다윈항. 사진=‘랜드브릿지 그룹(Landbridge Group)’ 유튜브  영상 캡처]
[호주 다윈항. 사진=‘랜드브릿지 그룹(Landbridge Group)’ 유튜브  영상 캡처]

다윈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현재도 동일하다.

호주는 미국의 중국 견제 이니셔티브의 핵심이 되는 국가로, 향후 다윈항에 들어설 미 해군 기지는 남태평양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실행시키기 위한 전진 기지에 해당한다.   

실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11년부터 다윈항에 해병대원 2천명을 순회 주둔시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2019년에는 새로운 수륙양용 함정과 'USS 와스프'(Wasp)과 같은 대형 강습상륙함이 주둔할 수 있는 규모의 새로운 기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중국 견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윈항을 향한 미국의 진심을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과 호주의 다윈항 임대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자, G20 정상회의에서 호주 총리에게 강력한 불만을 표명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감을 드러낸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과의 계약을 미국에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1일 회동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사진=AP/연합뉴스]

◆ 달라진 호주의 스탠스, '친미·반중'

공고할 것 같던 '다윈 동맹'은 호주가 다윈항 임대차 계약 건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5월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호주 국방 당국이 랜드브릿지그룹의 호주 북부 도시 다윈항 소유권 포기를 강제할 지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피터 더튼 호주 국방장관도 "호주 국방위원회가 국방부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고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가 다윈항을 둘러싼 패권 다툼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근 호주는 '친미(親美)' 스탠스로 확실하게 전환했다.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63년 만에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받아 최신 핵추진 잠수함 8척을 짓기로 한 ‘오커스(AUKUS)’ 동맹 가입에 이어 미국·일본·한국·인도와 안보 협의체 '쿼드(Quad)'를 형성해 중국의 대양 진출을 봉쇄하는 전략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 동맹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한번 더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해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호주는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때문에 중국이 호주를 향한 무역 보복에 돌입했을때 호주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두 국가의 무역 분쟁이 한 해를 훌쩍 넘긴 지금, 중국의 압승으로 종결될 것이라 예상됐던 바와 달리 승기는 호주 쪽으로 기울고 있다. 석탄·철광석 수입 금지가 '자충수'가 된 중국이, 최악의 한파가 예고된 올 겨울을 촛불로 이겨내야 하는 위기에서 엑시트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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