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의 도시' 벨기에 헨트, 리스강과 함께한 산업의 역사

직물공업의 중심지에서 관광산업의 메카로 북해 연안의 지리적 환경...무역의 중심지 14C 모직물 산업 지키기 위해 시민정부 수립

2021-07-15     최도식 기자
사진=픽사베이,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헨트시

[월드투데이 최도식 기자] 리스강은 헨트시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자원이다.  

벨기에의 헨트(Gent), 영어로는 겐트(Ghent)라 불리기는 이 지역은 북해로 흘러드는 리스강의 운하로 유명하다.

리스강은 현재 이 지역의 중요한 관광자원이자 '북유럽의 베니스'인 헨트시의 심장과도 같다.

과거 공업이 융성하던 시절 리스강에 공장폐수들이 흘러들어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사진=픽사베이, 리스강에서 보트를 즐기는 관광객들

이후 대대적인 리스강 수질 개선 사업이 시작됐고 현재는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여행도시로 거듭났다.

또한 이 지역은 북해와 인접한 플랑드르 지역으로 분류되어 북유럽과 영국 그리고 남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발달했다.

이 때문에 일찍이 해상무역과 공업이 발달했으며, 잉글랜드로부터 수입한 양모(Wool)를 가공해 만든 모직물 공업이 발달해왔다.

헨트시의 휘장. 방패 그려진 사자는 겐트시를 상징, 노란색 깃발은 헨트가 속한 플란데럴 지역의 흑사자기

헨트의 상공업자들은 도시에 모여 살며 집단의 권익 보호를 실현하기 위해 길드(Guild)를 결성했다. 

14세기에 벌어진 백년전쟁은 헨트시를 중심으로 한 길드가 얼마나 강한 응집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왕위계승 문제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으로 인해 당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프랑드르 지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의 무역을 금지했고, 이로 인해 모직물 공업이 중심이던 헨트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픽사베이, 헨트시의 야콥 판 아르테펠더 동상

결국 헨트의 시민들은 거상 야콥 판 아르테펠더(Jacob van Artevelde)를 중심으로 도시의 지배자였던 루이 백작을 몰아낸 뒤 별도의 공화정을 구성해 프랑스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형성했다.

이를 지켜본 영국 국왕 에드워드는 헨트 시민정부와 동맹을 맺었고, 이 지역에 대한 양모 수출을 허가한다.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헨트시의 직물산업은 현대에 들어 쇠퇴하게 되고 오늘날에는 무역의 심장이던 운하가 관광용으로 사용되어 이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다.

한편 벨기에를 대표하는 축제인 헨트 페스티벌은 올해 코로나로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