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o Z of EU] 브렉시트 되짚어 보기① 배경 및 국민투표 과정
뿌리깊던 영국의 반 유럽연합 정서, 독립당-보수당의 의제로 떠올라 유럽연합 및 유럽각국 영국 위해 개혁안 승은했지만, 결국 브렉시트 4%p 차이로 영국의 운명이 결정되다
[월드투데이 전유진 기자] ‘다양성 속 통합’의 가치를 내세우며 초국가 공동체 형성의 길을 걷고 있는 EU. EU는 공동시장 형성을 넘어 경제 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EU는 유로존 위기를 겪으며 회의론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위기론은 ‘브렉시트(Brexit)’로 심화된다. 이에 브렉시트의 배경 및 과정을 소개해본다.
◆ 브렉시트란?
브렉시트(Brexit)는 영국이 유럽을 탈퇴하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이다. 2016년 영국에서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이 우세하여, 탈퇴가 결정된 후 2021년 1월 1일부로 탈퇴를 마쳤다.
◆ 뿌리 깊은 영국의 반 유럽연합 정서
정치 및 경제 공동체인 EU에 대하여 영국 내에는 회의론자들이 꾸준히 존재해왔다. 이는 유럽연합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의 굵직한 나라들이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발족한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 영국은 제안을 거절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참여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73년이었다. EC(European Communities, EU의 전신)가 되어서야 합류했다. 1999년 시행된 유로존에서도 영국은 발을 뺐다. 프랑스, 독일 등은 여전히 참여한 채였다.
탈퇴하기 전에도 반 유럽연합 정서는 강했다. 물론 찬성론자도 존재해왔지만 이러한 반 유럽연합 정서를 이용하는 정당이 등장했다. 독립당이다.
◆ 독립당, 반유럽연합 정서를 부추기다.
독립당은 영국 내에는 영국이 EU에 속한 것에 불만을 갖는 여론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단일 의제만 다루는 정당이다. 즉 다른 문제는 다루지 않고 영국의 EU 독립만 주장하는 정당이다.
2014년 진행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립당은 반 유럽연합 정서에 편승하여 성공을 거둔다. 독립당이 브렉시트에서 주요한 이유는 독립당의 움직임이 다른 정당들에게도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 진행된 총선, 2015년 하원 의원 선거 등에서 보수당은 유럽연합 탈퇴를 주요한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고, 이가 실제로 국민투표로 이어졌다. 보수당의 사례를 살피기 전, 유럽연합 탈퇴파, 잔류파의 입장을 살펴보자.
◆ 유럽연합 탈퇴파
탈퇴파들의 주장은 크게 세가지이다. 유럽연합 분담금, 이민자, 주권 상실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발생한 영국의 경기 침체, 긴축 재정, 이민자 증가 등의 상황과 연관 있다.
당시 영국은 EU에서 세번째로 제일 많은 EU 분담금을 내고 있었다. 이 돈은 유럽연합의 예산으로 사용된다. 일부 영국 국민들은 이렇게 돈을 많이 내는 만큼, 영국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민 및 이주민이 증가하여, 자국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래서 청년들이 본래 국가에서 떠나 원하는 국가에서 비자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만큼 영국 자국민들의 일자리가 줄고 복지 지출은 증가됐다. 안 그래도 2000년대 들어 어려워진 영국의 경제 상 일자리 부족과, 복지 지출 증가는 경계 대상이었다.
무역 관세 역시 불만이었다. EU가 정하는 관세보다는 자국이 매기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EU가 영국의 주권을 제약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반대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탈퇴파는 영국이 EU를 탈퇴함으로써 주권을 회복하고 예산이 절감되며 EU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 규제와 이민통제가 가능해진다며 탈퇴를 찬성했다.
◆ 유럽연합 잔류파
잔류파들은 EU 탈퇴 후 영국이 겪을 경제적 충격을 우려했다. 유럽 연합 내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 관세가 다시 붙어 무역량이 감소하고, 경제 성장의 둔화, 실업의 증가를 걱정했다. 영국 런던은 유럽 연합의 금융 중심지였으나, 유럽 연합이 아니게 되면 메리트가 사라져 회사들이 옮길 가능성이 크고, 인력 유출 및 자본 이탈도 발생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럽 대륙 내 영국의 목소리는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EU 탈퇴가 결정되고 나서 영국 주가는 타격을 입었다. 파운드화도 폭락했다.
당시 EU에게서 지역발전 보조금을 받고 있던 북아일랜드와 웨일스 등에 예산 공백의 문제도 화두였다.
◆ 캐머런 총리, 그의 공약
2010년부터 제75대 총리를 역임한 데이비드 윌리엄 도널드 캐머런은 결과적으로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한 데 큰 영향을 행사한 인물이다.
보수당 소속인 그는 총리이지만, 보수당이 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보수당이 제1당이지만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체제로 수상의 자리에 올랐다. 고로 보수당은 진행될 2015년 5월 총선에서 많은 수의 의석을 차지해야 했다.
캐머런은 본래 EU 잔류파였다. 그러나 정치적 입지를 위해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2013년에 한다. 앞서 살펴본 독립당 등 일부 불만이 존재한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나아가 보수당의 분열이 심각해지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검토한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한다. 그는 이제 독립당의 총리로 역임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캐머런이 약속한 ‘브렉시트’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투표를 언제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가 영국의 주요한 의제로 떠올렸다.
◆ 브렉시트를 막고자 띄운 승부수, 그러나 결과는…
캐머런 총리는 막상 EU탈퇴가 가까워지자 잔류파로 돌아섰다. 그는 국민을 설득하고자 유럽 각국과 유럽 연합의 관계에 대한 재협상을 시행했고, 2016년, 유럽 각국은 영국의 EU 탈퇴를 막고자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주된 골자는 외국인 이주민 정책 분야에 '본국에 자녀를 두고 온 이주민에 대해 양육수당 삭감, 7년간 복지혜택 중단', 영국의 독자적인 통화·금융정책 보장 약속이다.
영국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에도, 이가 영국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탈퇴를 원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고, 탈퇴파들은 탈퇴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잔류를 원하는 캐머런 총리는 사퇴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당시 상황은 찬반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여론조사도 며칠을 주기로 뒤바뀌었다. 계층 및 세대별로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청년층과, 진보층의 중장년층은 잔류에 손을 들었고, 노년층이나 보수 청년층은 탈퇴를 원했다. 그리고 금융 자산이 많은 계층일수록 탈퇴를 원했다.
카메론 총리는 EU와의 협상을 통해 영국이 만족할 수 있는 EU개혁을 달성하고 개혁된 EU에 영국이 잔류하는 방향을 국민투표로 승인받으려는 승부수를 띄었다. 유럽 각국과 협의를 진행한 것도 이 의도이다. 총리는 비교적 온건한 대안을 내세우는 전략을 보인 것이다. 무엇보다 여론조사가 탈퇴보다는 잔류가 높게 나왔기에 과감하게 국민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오차범위 내 뒤집힐 수 있고 실제로 자주 뒤바뀌었지만 본래, 샤이 보수가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했다.
2016년 6월 24일 영국의 EU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그 결과는 탈퇴 찬성 의견이 51.9%으로, 탈퇴가 결정되었다. 탈퇴 반대파와는 4%p 차이였다. 카메론 총리는 이에 책임을 지고 사임할 것을 발표했다.
◆ 개혁안에 협조한 EU, 탈퇴 결정후엔 빠른 탈퇴의 요구
2016년 초에 진행된 영국 측의 개혁안에 EU는 긍정적이었다. 대부분을 수용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탈퇴가 가결되자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탈퇴절차를 마치라고 영국에게 요구했다.
프랑스 독일 등 EU의 지도국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하여 이민 수용과 같은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EU로부터 경제적 이득은 계속해서 얻으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강하게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에 영국도 2017년 3월 유럽집행위원회에 탈퇴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연합이 영국의 탈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 이전부터 유럽연합 내에 존재해왔던 유럽연합 회의론 때문이다.
◆ 영국 외에도 존재하는 유럽통합 회의론
영국뿐만 아닌, 다른 국가들 내에서도 유럽통합 회의론은 언제나 존재했다. 2010년 초에 발생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재정위기는 유로존의 붕괴 우려까지 불러 일으키며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로존 붕괴를 막고자 유럽 재정안정기금을 증대해야 했고 각국의 부담은 늘어났다.
위기가 계속되자 EU는 그리스 등에게 엄정한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그리스는 주권 제한이라며 반발하여 유로존 탈퇴를 이야기했고 그것이 바로 ‘그렉시트’였다. 결국 그리스는 잔류를 택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EU의 입장은 강경하다. EU의 의무를 지고 싶지는 않지만 경제적 이득만 얻으려고 하는 제2, 3의 영국이 나올 가능성이 커질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브렉시트 결정 후, 첩첩산중
국민투표까지 오히려 쉬운 과정이었다. 브렉시트 결정 후 영국의 앞날은 더 오리무중이었다. 캐머런 총리 사임 후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수습에 2년을 매달렸으나 결국 그마저 사임했다. 결정 후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리그렛시트라고 이를 지칭한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분담금 및 합의금 문제, 북아일랜드 – 아일랜드공화국 사이의 국경 문제 등이 발생했다. 영국은 협의기간을 자꾸 늘렸고, 유럽연합은 기간을 초과하는 것에 대해여 ‘노딜 브렉시트’를 경고했다. 이에 대한 과정은 후속기사에서 구체적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