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로 알아보는 음악세계] BTS가 선택한 '디스코'

2021-09-29     김수민 기자

[월드투데이 김수민 기자]  BTS가 선택한 디스코는 차별로 힘들 때나, 코로나19로 힘들 때나 언제 어디서든 흥을 돋구며 세상을 밝히는 장르이다.

BTS가 선택한 디스코(Disco)

[사진=방탄소년단 'Dynamite' 뮤직비디오]

지난 2020년 방탄소년단이 국내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첫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곡은 바로 디스코 팝 장르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다.

BTS 슈가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디스코 팝 행복과 자신감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어깨춤을 추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신나는 곡이에요."라고 뜻을 전했다.

백인들의 로큰롤과 흑인들의 R&B가 만난 디스코는 4/4박자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으로 구성된다. 특히 드럼과 베이스를 바탕으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다.

디스코의 시작과 전성기

디스코(Disco)의 기원은 프랑스어 디스코텍(Discotheque)이다. 이 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대 프랑스는 나치의 점령을 받고 있었다. 나치는 재즈 음악을 엄격하게 금했는데, 나치의 감시를 피해 LP로나마 재즈를 즐기고자 하는 프랑스인들이 지하 클럽으로 모여든다. 이러한 클럽을 디스코텍(Discotheque)이라 불렀다.

1960년대 디스코텍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동부의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나이트클럽을 뜻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된다. 이때 미국 음악계는 영국의 록 음악과 뮤지션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영향으로 디스코텍은 주류 문화에서 밀려난다.

[사진=클럽에서 춤 추는 사람들, 픽사베이]

메인스트림에서 떨어져 나간 디스코텍은 흑인과 히스패닉, 여성, 동성애자 등 소외 계층들의 주목을 받으며, 차별의 눈길에서 벗어나 춤추고 즐기는 하나의 장으로써 기능하게 된다. 그 결과, DJ들은 춤추기 좋은 음악들을 틀기 시작했고 그 음악들은 하나의 음악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다.

1973년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가 이 음악들을 처음으로 '디스코'라고 명명한다. 이후 1977년 12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개봉과 동시에 사운드트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97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디스코 열풍이 불었다. 

당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도나 섬머(Donna Summer), 보니 엠(Boney M) 등이 있다.

디스코의 몰락

[사진=야구 구장, 픽사베이]

디스코의 전성기는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을 기점으로 점차 시들해진다. 때는 1979년 7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홈구장인 코미스키 파크(Comisky Park)에서 벌어진 이벤트에서 촉발된다. 

평소 디스코가 달갑지 않던 DJ 스티브 달은 디스코에 싫증을 느끼는 대중의 분위기에 편승해 구단 측과 상의해 일명 '디스코 반대 운동' 이벤트를 개최한다. 디스코 음반을 가져오는 관객에 한해 98센트 할인을 약속한다.

후에 DJ 스티브 달은 관객들이 가져온 음반들을 그라운드에 모아 폭파하는데, 행사 분위기에 취한 일부 관객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한다. 설상가상 이벤트를 관전하기 위한 사람들도 모이면서  구장 시설이 망가지고, 싸움이 발생하는 등 폭동으로 치달으며 경기가 중단되고 만다.

디스코의 현재

[사진=The Weeknd]

디스코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자 악기와 결합해  포스트 디스코(Post Disco)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덥(레게) 음악, 하우스 등으로 발전한다.

현대에 와서 복고 열풍으로 재조명되거나 음악적 한 요소로 차용되어 브루노 마스(Bruno Mars), 위켄드(The Weekend) 등 유명한 아티스트의 트랙에 등장하고 있다. 


나치는 왜 재즈를 싫어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재즈의 '여유로움'에 있다.

[사진=히틀러, 픽사베이]

히틀러 정치 운동의 계기가 바그너 작품일만큼 나치에게 음악은 하나의 정치적 도구였다. 나치는 국민들을 자신들의 말과 논리로 설득시키기 위해 음악을 적극 이용했다. 

독일에는 유독 바흐, 헨델 등 위대한 음악가가 많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은 1차 대전 패전으로 상처받은 독일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 음악가이다. 나치는 독일 고전음악과 동시에 베토벤을 독일일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표방하며 다른 인종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로 채택했다. 

자아도취에 빠진 그들의 음악과 재즈는 대척점을 이뤘다. 나치가 사랑한 독일 고전음악은 엄격한 악보 위주로, 작곡가의 뜻에 따라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재즈는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한다. 

또 정박자를 이룬 행진곡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고 했던 나치에게 몸을 들썩이게 하는 재즈는 눈엣가시였다. 

동시에 재즈는 나치와 정반대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미국의 음악이었으며, 그들이 열등하다고 믿는 흑인의 음악이었다. 결국 그들은 '흑인=재즈=유대인'이라는 기괴한 등식을 적용해 재즈를 "더러움 음악"이라 표현하기까지 이르며, 뿌리를 뽑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