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시선] '5대 핵보유국'이 발표한 핵전쟁 방지 성명은 허상일까

미·중·러·영·프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 발표 독점적 핵 권력이 말하는 '평화' 의문 제기돼

2022-01-05     한진리 기자

[월드투데이 한진리 기자] 새해 벽두를 울린 5대 핵보유국의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을 두고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실질 핵보유국들이 핵을 놓지 않고 외치는 목소리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연합뉴스]

5대 핵보유국 정상,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 발표

지난 3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5대 핵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정상들은 핵전쟁 방지와 군비 경쟁 금지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전쟁 방지와 전략적 위험 저하를 우리의 최우선 책임으로 간주한다"라며 "핵전쟁에서는 승자가 있을 수 없으며, 핵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어 "핵무기 사용은 장기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핵무기가 존재하는 동안 그것들이 공격을 억지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방어적 목적에 사용돼야 한다는 점도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당초 이번 성명은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개최 예정이던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되며 선공개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초 러시아 모스크바 에서 만남을 가진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신화통신]

러시아·중국 "공동 성명, 우리가 제안한 것"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공동성명이 자국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마리아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 공개 이후 "이번 성명은 러시아의 제안과 러시아 대표들의 적극적 참여로 준비됐다"고 밝혔다. 

중국 또한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3일 핵보유 5개국 정상이 발표한 핵 전쟁 방지와 군비경쟁 회피에 관한 공동 성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고 CGTN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전했다.

마 부부장은 "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이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강대국 경쟁을 조정된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이들 국가가 긍정적이고 확고한 성명에 도달하도록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마 부부장은 "5개국 정상이 핵무기 관련 성명을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핵전쟁 방지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세계의 전략적 안정 유지와 핵 갈등 위험 감축이라는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사진=조선 중앙 통신]

'공식적' 핵 보유국과 그 외 국가들 

현재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5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제9조 3항에서 명시한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와 그밖의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또 폭발시킨 나라'로 한정된다.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으로, 이들은 핵무기 보유 및 개발이 허용되는 특권을 인정받는다. 

NPT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비공식 핵보유국으로는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3개국이 있다. 이들은 NPT 가입은 하지 않았으나 각각 1974년과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 받는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핵실험을 진행한 적은 없으나 미국의 묵인하에 다량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경우는 조금 특수한데, 1985년 NPT에 가입한 뒤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지난 2017년 제6차에 이르기까지 총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참석한각국 대표단. 상임 이사국인 니키 헤일리 미국 대표가 손을 들어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사진=Getty Images]

공동성명의 명과 암

이번 공동성명은 국제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로이터,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서방과 러시아,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이례적인 성명"이라며 긍정 평가에 무게를 실었다. 

외신들의 보도처럼, 이번 성명은 핵보유국이 신냉전 체제의 살얼음판에서 자발적으로 핵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컨센서스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그간 NPT가 다소 외면해 온 핵 군축 면에서 다소간 진전을 보이며 국제사회의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3년 1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지지 100만명 군중대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이번 성명은 국제법적 효력을 지닌 의무를 부과하는 협약이 아닌, 핵 보유국의 자발적인 정치적 약속이다. 따라서 미이행시 패널티를 가하는 등의 실질적인 제재가 불가하다. NPT와 상관없이 '마이웨이'를 걷는 북한 같은 국가에게는 특히나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다.   

핵 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 의회연구소(CRS)는 '미-러 군비 통제' 보고서에서 "최근 안보 환경에서 이 공동성명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보고서는 "일각에선 이 공동성명이 지역분쟁 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외시켜 대규모 재래식 및 사이버 공격 억지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사진=AP통신]

핵 포기 없이 외치는 평화는 허상일 뿐

핵보유국이 주관하는 NPT 평가 회의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꾸준한 비판이 제기돼왔다.

NPT 평가회의는 조약 제8조 3항에 따라 매 5년마다 조약 이행 상황 등을 검토하기 위해 열리는 가입국 회의로, 핵무기 비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허상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다.

우선 지난 2015년 제9차 NPT평가회의에서 회원국들 간 이견으로 합의문이 불발된 이후 현재까지 NPT의 핵비확산·핵군축 쟁점에 대한 합의가 수월치 않다. 올해 회의 역시 코로나19로 연기된 상태다. 

회의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선에는 핵무기 독점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강대국들이 먼저 보유한 핵 무기를 완전 독점하기 위해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창설하고, 핵 비확산을 명목으로 내세운 것 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NPT 평가 회의든, IAEA 결의안이든 도출된 컨센서스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평화의 일조하기 위해서는 핵을 독점한 국가들이 스스로 핵 우산을 내려놓아야 한다. 핵 권력의 막강함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핵 군축을 주장하는 것은 '내로남불'식 허상에 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