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임신 24주 이전 이유 불문 낙태 가능...낙태법 둘러싼 세계의 반응
콜롬비아, 임신 24주 이전 낙태 처벌 안한다 에콰도르, 15년 만에 낙태금지 일부 완화 중국, 인구감소 우려한 낙태 금지 움직임 포착?
[월드투데이 박한나 기자] 콜롬비아가 임신 24주까지의 낙태를 처벌하지 않기로 판결했다.
21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최고 법원인 헌법재판소는 "앞으로 임신 24주 이후에 행해진 낙태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전하며 법원은 정부와 의회가 관련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현지 일간 엘티엠포는 '역사적인 결정'이라는 표현과 함께 "이제 앞으로 콜롬비아에서 임신 6개월까지의 낙태는 합법이며 그 이후엔 2006년 발효된 규정이 유효하다"고 전했다.
콜롬비아는 지난 2006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산모의 목숨이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 태아가 생존이 어려운 심각한 기형을 지닌 경우,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에만 임신 개월 수에 관계없이 낙태를 허용해왔다. 불법 낙태가 적발될 경우 징역 16∼54개월의 처벌을 받아왔다.
시민단체 '정당한 이유'(Causa Justa)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350명가량의 여성이 낙태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중 80%는 18세 미만이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음지에서 이뤄지는 불법 낙태 시술에 의존해왔고, 한해 70명가량의 여성들이 이러한 불법 시술 탓에 목숨을 잃었다.
에콰도르에서는 성폭행 피해자의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했다. 낙태 가능 기간은 도시 지역 성인 여성의 경우 임신 12주 전까지, 미성년자나 농촌 지역 여성의 경우 임신 18주까지다.
현재까지 에콰도르에선 임신부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나 정신지체장애인이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모든 성폭행 피해자의 낙태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법제화가 추진돼 왔다.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은 이날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검토해 30일 내에 서명할지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라소 대통령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앞서 국회의 결정을 존중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에콰도르 내 낙태법에 관한 이슈는 낙태 찬반 시위를 야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여성단체 등은 낙태 허용 기간이 임신 초기로만 제한된 것에 반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움직임은 주변 중남미 국가의 낙태 합법화에 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중남미 지역에선 아르헨티나와 쿠바, 우루과이, 가이아나 그리고 멕시코의 일부 주에서만 임신 초기 낙태가 합법적으로 허용된다.
기타 나머지 여러 국가는 성폭행 임신이나 임신부가 위험한 경우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은 어떠한 예외도 없이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편, 낙태 합법화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남미와 달리 중국에서는 인구감소를 막으려는 낙태 시술이 제한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생명권을 주장하는 낙태금지법이 성행을 하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낙태 시술의 자유를 정부가 제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7일 사회단체인 중국계획출산협회 홈페이지에 기재된 올해 사업 계획에서 협회는 12가지 세부 계획 중 9번째로 거론한 '생식 건강 서비스의 확고한 추진'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세부 내용에는 '미혼자 집단의 인공유산에 관여하는 특별 행동을 전개해 청소년의 예상 못 한 임신 및 인공 유산을 줄이고, 생식 건강 수준을 개선할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됐다.
이에 중국 SNS 내에는 정부가 젊은 미혼 여성에 대한 낙태 시술을 제약하기 위해 밑자락을 깐 것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 것이다.
지난 10일 후시진 관영 환구시보 전 편집장은 계획출산협회의 게시물에 대해 "과도한 낙태 시술을 초래하는 의도치 않은 임신을 막으려는 취지로 이해했다. 낙태 시술을 저지함으로써 인구 증가를 꾀하려는 정책 선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가 억지로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해 의학적 필요에 의한 것 말고는 낙태를 못 하게 하면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 정책은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전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에는 정부와 민간의 정규 의료기관에서 낙태 시술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지난 2021년 중국 산부인과 관련 잡지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중국 내 낙태 시술 건수가 950만 건 안팎이며, 약 4만 명의 여성을 표본 조사한 결과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 가운데 25세 미만의 비율이 47.5%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낙태를 둘러싼 논의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전 세계의 중요한 논재이다.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 첨해한 대립은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거나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친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시대와 통상적 관념의 접점을 이루는 대처가 도출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