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뇌신경질환 환자들의 고통 이해할 수 있는 기회...

2022-03-24     이주원 기자

[월드투데이 이주원 기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신경학, 정신의학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본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총 24편의 이야기로 풀어 쓴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총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최초 발간은 1985년이었지만, 2015년 올리브 색스의 타계 후 1주기를 맞아 개정판으로 재발간하였다. 

[사진=알마]

다른 질환과 달리 뇌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신경·정신과적 질환은 그저 '정신나간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편견일 뿐 이들도 다른 환자들처럼 자신의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환자들의 병력 임상보고서의 목적으로 쓰지 않았다. 저자는 환자가 '누구' 인지를 그들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보다 중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자폐증부터 생소할 수도 있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이르기까지 여러 뇌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1부 - 상실

1부 '상실'은 뇌·신경에 '결손'이 생겨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1부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오랜 세월 '좌반구'의 보조역할 정도로 취급받던 '우반구'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1부의 이야기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는 '시각인식불능증'을 앓고 있는 '음악가 p씨'가 등장한다. 그는 좌반구는 정상이지만 우반구에 결손이 일어난 사람이다. 
그의 시력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자신의 발을 자신의 신발로 착각하거나 아내의 머리를 자신의 모자로 착각하는 등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우반구'를 열등한 부분으로 취급하며 우반구의 결손에 대해서는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폄훼해온 신경의학계에 반박을 제기했다.

1부는 가장 많은 수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만큼 뇌 기능의 결손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겪는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2부 - 과잉

2부의 '과잉'은 조증과 같이 신경 기능에 '과잉'이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신경과잉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틱, 갖가지 강박, 유별난 행동 등 환자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는 증세를 나타낸다.

한편 환자 중 일부는 신경 과잉으로 나타난 '각성효과'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p.275" 

이 환자들은 의학적으로는 '비정상'일지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병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다. 보통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세계에 '행복'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신경과잉 증상속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이들을 보며 '행복'은 상대적인것임을 깨닫게 된다. 

3부 - 이행

3부 '이행'은 뇌의 이상으로 환청이나 환영을 보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에 들었던 음악을 듣거나 환상을 보는 환자들 중 어떤이는 이를 몹시 괴로워하지만, 어떤 환자는 오히려 그로부터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야기 '회상'에 나오는 'C부인'은 회상 증세를 통해 그리운 어린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재생되는 경험을 하는데, 이를 통해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은 윤곽만 흐릿하게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과거의 장면을 뇌의 이상으로 인해 뚜렷하게 보고 듣는 이들은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4부 - 단순함의 세계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추상성'은 상실한 반면 '구체성'은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자폐증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 이들은 사물의 패턴을 파악하여 일반화하는 추상화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작용인지 이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구체화' 에 있어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감히 일반화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림으로,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들은 타인과 구별되는 '구체성'이 더욱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특별'하다. 

저자는 이들의 특별하고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태곳적 옛날부터 '이야기'는 어렵고 따분한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이 3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일반인은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신경질환들을 흥미롭게 하나의 이야기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저자가 말했듯 우리는 이 책을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 단편집으로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환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