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북리뷰] '익숙함'에 대한 고발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년 12월 국내 발간...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데뷔작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차지하며 인기몰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월드투데이 이주원 기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미국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데뷔작이다. 이 책은 에세이와 같이 읽기 쉽게 서술되어 있으면서도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 자료를 더하여 과학 전문기자로서의 역량을 더했다.
작년 12월에 국내에 번역되어 발간된 이 책은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멈출 줄 모르는 열정
어린 시절부터 삶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던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은 후 큰 혼란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중 시련과 절망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저자의 눈길을 사로잡게 된다.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대상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5년 동안 어두운 밤하늘에 있는 별들을 분류하였으며 이후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듯 미들 네임으로 '스타'를 사용하게 된다. 이후 데이비드는 하늘에서 땅으로 시선을 돌려 바위와 꽃에 관심을 보였으며 페니키스 섬에서는 본격적으로 바다로 눈을 돌려 '물고기'들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과 세계 곳곳을 돌며 수천 종의 물고기들을 포획하여 유리 단지에 담아 실험실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다. 도중에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을 잃고, 자연재해로 수많은 물고기 표본들이 손실되었어도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멈출 줄 모르는 데이비드의 정열적인 모습에 매혹된 저자는 그에게 무한으로 동력을 공급했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삶의 자취를 탐색한다. 그러나 저자는 잔인한 맹목적이고도 왜곡된 신념이 그 근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고기는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무서우리만큼 광적으로 집착했다. 생명체들에 위계를 부여하는 그의 대업(大業)에 방해가 된다 생각되면 가차 없이 매몰찼다. 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데이비드를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창으로 추대한 제인 스탠퍼드의 독살에 깊이 연루되었으며, 자신의 측근의 비위를 무마하기 위해 이를 고발하는 사서를 협박하기도 하였다.
동물 간의 '위계'에 광적으로 몰입했던 그에게 인간에게도 질적인 위계가 존재한다는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은 성서와 같은 것이었다. 우생학에 반하는 것은 마치 죄가 되는 것처럼, 데이비드는 우생학의 원칙에 따라 사람들을 철저하게 분류하고 명명했다. 그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인간'이 퇴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행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부적합자'들을 철저하게 격리하고 말살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 데이비드가 일생을 바쳐 쌓아올린 '어류탑'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1980년대에 들어 분류학자들이 '어류', 즉 '물고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명한 것이다.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인가?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데이비드의 '물고기'는 애초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징하게 밝힌 저자는 책 말미에 그가 일생 동안 몸 바쳐 이루었던 '어류'라는 이름에 사형선고를 내리며 '익숙함'에 대해 경고한다.
결국 데이비드가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부적합자'라는 명명을 한 것이나 지느러미와 비늘이 달린 모든 생명체를 '어류'라는 범주에 가둔 것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절대적이고 신성한 척도 아래 만물을 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미묘하고 실존적인 가치는 너무 나게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되었다.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과거 어느 날 데이비드의 실험실에 바늘로 꿰뚫어진 채 차가운 유리 단지 속에 갇혀있었던 생명체들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도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프레이밍 속에 본질이 가려진 수많은 가치들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그냥 지나친 많은 것들 중 진정한 진리가 있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