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고전작가①] 20세기 전체주의를 비판하다 - '조지 오웰'
오늘날에도 여전한 '계급사회'...그는 '동물농장', '1984'에서 이미 통찰했다 정치사회 부조리의 고발자로서 '문학의 역할' 강조한 '조지 오웰' 그의 "통제된 사회"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
[월드투데이 이주원 기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20세기 영국의 작가로 1903년 6월 25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벵골 지방에서 태어났다.
오웰은 1917년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에 장학생 신분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입식으로 진행되는 학교 교육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한 그는 낮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영국의 식민지인 버마(미얀마)로 가서 경찰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오웰은 버마에서 '제국주의'라는 이름 하에 유색인종 피지배자들에게 자행되는 수많은 차별과 핍박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후 오웰은 제국주의에 대한 모멸감과 더불어 앞잡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고뇌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5년 만에 경찰직을 그만둔 후 작가가 되어 전체주의의 참극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라고 밝히며 작가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진지한 작품들은 그 어느 한 줄이건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쓴 것들이다. -나는 왜 쓰는가 中-
이처럼 그가 일생 동안 쓴 작품들은 단순히 머릿속에 기포처럼 떠다니는 관념들을 엮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는 무엇이든 직접 겪고 보고 느꼈으며, 그것들의 실상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가 버마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겪은 제국주의의 참상,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본 사회 하층민들의 생활상, 그리고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느낀 '스탈린주의'의 실체는 모두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문학은 '르포르타주'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역, 열린책들, 2009.11.30
어느 날 '매너 농장'의 동물들은 큰 창고에 모여 다른 동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의 연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들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인식하게 된 동물들은 이후 날을 잡고 작심하여 주인인 '존스'에게 반기를 들게 된다. 결국 존스 일가를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한 동물들은 농장의 이름을 '동물 농장'으로 바꾸고 '영국의 짐승들'을 노래하며 모든 동물들이 진정으로 평등해진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의 소망은 실현될 것인가.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1945년에 출간된 '동물농장'은 당시 미국에서 50만 부 이상 판매가 되는 등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조지 오웰을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동물들의 의인화와 함께 조지 오웰 특유의 익살스러운 문체가 결합되어 우화적, 풍자적 성격을 띠는 '동물농장'은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동물농장'을 단순히 재미있는 우화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소설에는 당시 스탈린에 의해 전체주의국가로 변질되고 있는 소련에 대한 오웰의 날카롭고 육중한 비판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가 이를 우화로서 비유적으로 비판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책이 저술되던 당시에는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고 당시 영국과 소련은 연합군 진영에서 함께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 체제를 대놓고 비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알레고리(Allegory)라는 고도의 문학적 표현 기법을 통해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들을 각각 스탈린, 트로츠키 등과 일대일로 대응시켰다. 이 중에서 어떤 동물은 하나의 실존 인물이 아닌 특정 성격을 띠는 온갖 군상들과 대응되기도 한다.
'1984년'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역, 열린책들, 2009.12.20
1984년, 국가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였고 종국적으로 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세 개의 통일된 초국가로 나뉘게 된다. 그중에서 '오세아니아'의 외부 당원인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러더'라는 독재자에 의해 자유가 통제되고 인격이 짓밟히는 자국에 불만을 품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마음속에 전체주의에 대한 모종의 '혁명 정신'을 품게 되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은밀히 찾아 나서게 된다.
빅 브러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1984년(또는 '1984')'는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마지막 소설로, '동물농장'과 마찬가지로 스탈린 치하의 과두제였던 소련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오늘날 개개인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 시스템을 빗댈 때 사용되는 '빅 브러더'라는 단어도 이 소설에서 유래하였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닥쳐올 수 있는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오웰이 예언한 사회였던 1984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이 소설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 고도의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우리의 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편리해졌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언제든지 사생활이 쉽게 노출될 위험에 처해있다. 또한 우리가 방심한다면, 텔레스크린에 의해 실시간으로 감시당하는 소설 속 오세아니아 사회처럼 더 치밀하게 계획된 '관리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IT의 발달 속에서 과연 우리들의 사회는 계속해서 진보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잘 보이지 않는 정보사회의 병폐에 대해 끊임없이 인식하고 경계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