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고전작가②] '하드보일드'의 대가 - '어니스트 헤밍웨이'

강인한 '남성성'을 추구했던 그의 생애, 그의 작품에도 녹아들다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 20세기 미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하드보일드'로 감정은 절제하고 해석은 풍부하게 했다

2022-05-23     이주원 기자
[사진=위키피디아]

[월드투데이 이주원 기자]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걸출한 글 솜씨를 자랑했던 그는 졸업 이후 '캔자스시티 스타'라는 신문사에서 기자로서 일하기 시작한다. 작가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일생 동안 직접 발로 뛰며 사회의 부정부패, 불평등 등을 취재하고 이를 낱낱이 폭로하는 '저널리즘'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기자'로서의 헤밍웨이의 흔적은 그가 집필한 작품 전반에도 뚜렷하게 스며있다. 그는 핵심 내용만 전달하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기사체'를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적용시켜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느낌을 가미했다.

여기서 '하드보일드'란 어둡고 암울한 주제에 관해 복잡한 감정묘사 없이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는 독자가 인물의 숨겨진 감정을 추측하게 만듦으로써 상상력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한편 '노인과 바다' 집필 이후 이를 뛰어넘는 또 다른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강박감 속에서 심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1961년 7월 2일 자살로 생애를 끝마치게 된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역, 열린책들, 2012. 02. 10.

[사진=열린책들]

작은 어촌 마을에서 어부 생활을 하고 있는 '산티아고'라는 한 늙은 노인은 84일 동안 바다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85일째 되는 날, 여느 날처럼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으로 나간다. 자줏빛의 암청색을 띠는 깊은 바다까지 나간 그는 마침내 무겁고 커다란 어떤 물고기와 조우하게 되고 이를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이게 된다.

고기는 이제 죽음을 예견한 듯 아연 살아나면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 엄청난 길이, 넓이, 그놈의 엄청난 힘과 아름다움이 여실히 노출됐다. 놈은 배에 서 있는 노인의 머리 위 상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이어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떨어져 바닷물을 노인의 전신과 배의 온 바닥에 뿌려 댔다.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당대 문학 평론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1953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으며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이 소설은 헤밍웨이가 다니던 낚시 동호회에서 한 회원으로부터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투하는 인간상을 다양한 상징(Symbol)을 통해 스케치하고 있다. 상징은 '알레고리(Allegory)'기법과 달리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노인과 바다'는 여기에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문체가 결합되어 더욱 풍부하게 해석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다수 해석으로는 노인의 모습에 결코 '패배'될 수 없는 인간상이 어려있다는 것이 있다. 이 외에도 헤밍웨이 특유의 짙은 '허무주의'가 작품 전반에 반영되어 있으며, '승리'라는 서사의 끝은 결국 또 다른 '패배'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물론 명확한 정답은 없으며, 의미의 재구성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역, 열린책들, 2012. 02. 10.

[사진=픽사베이]

기자 출신 소설가 '해리'는 자신의 부인 '헬렌'과 함께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물소 떼의 사진을 찍으려다 가시에 무릎이 찔리게 되고 이후 제대로 된 처치를 하지 않아 파상풍에 걸려 괴저가 일어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트럭까지 고장 나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해리는 야전침대에 누워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구조를 기다린다.

킬리만자로는 높이 19,170피트의 눈 덮인 산이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의 서쪽 정상은 마사이어로 '은가예 은가이'라고 하는데 '신의 집'이라는 뜻이다. 서쪽 정상 가까운 곳에 바싹 마르고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표범이 그렇게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1936년에 발표된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삶의 고통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흔히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그간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는데, 소설의 주인공 또한 세균의 독소가 온몸에 서서히 퍼지는 것을 느끼며 지난 삶들을 돌아본다. 

마지막이 점차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그는 찰나의 기회를 붙잡지 못한 순간들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얼어붙은 표범과 같은 자신을 생각했을까. 불투명한 작가의 메시지 가운데 '어떤 선택은 모종의 대가를 요한다'라는 것만은 뚜렷해 보인다.

무기여 잘 있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역, 열린책들, 2012. 02. 15.

[사진=열린책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인인 '프레더릭 헨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전선을 맞대고 있는 이탈리아 왕국에 의무장교로서 지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친구인 리날디에 의해 영국인 간호사인 '캐서린 바클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헨리는 전장에 나가있는 순간마다 바클리를 생각하며 전쟁 후 그녀와 함께 지내는 행복한 삶을 줄곧 상상하곤 한다.

전쟁은 이제 머나먼 곳에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에는 전쟁이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전쟁을 끝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무렵인 1917년 종군기자로 활약하였으며 1918년에는 직접 이탈리아 군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하기에 이른다. 그의 장편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자전적 소설이자 반전(反戰) 소설이며, 전쟁의 참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불요함을 내비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캐서린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헨리의 모습은 사랑의 시의성을 부정한다.

한편 소설의 원제목인 'A Farewell to Arms'에서 'Arms'는 '무기'라는 의미도 있지만 '양팔'이라는 의미도 있다. 

과연 이 '양팔'은 누구의 팔일까. 왜 주인공은 '무기'와 '양팔'에 작별을 고하는 것일까. 그리고 두 대상에게 작별을 고한 후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궁금하다면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