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순환선 위에서 다시 짜는 도시의 미래

일본 시부야역 공사장. /사진=픽사베이
일본 시부야역 공사장. /사진=픽사베이

[월드투데이 도쿄=이사오 통신원] 대도시 밀집지역의 경우 더 이상 개발할 부지가 존재하지 않고, 인구는 밀려드는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노후화한 도심지를 개발할지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 간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의 이슈를 해결한다기보다는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고 도시개발 계획을 짜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도쿄의 도심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고층 빌딩 하나가 들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의 중심축 자체가 재편되는 움직임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도쿄를 원형으로 감싸고 도는 야마노테선이 있다. 전통적으로 도쿄의 핵심 생활·업무권을 형성해 온 이 순환선 주변에서 대규모 재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일본식 ‘신(新) 도심’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야마노테 라인은 도쿄 시민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교통 인프라다. 신주쿠, 시부야, 도쿄, 우에노 같은 주요 거점이 이 노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최근 일본 정부와 도쿄도, 민간 디벨로퍼들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새로운 도시를 외곽에 만드는 대신, 이미 인프라와 수요가 집적된 기존 중심부를 다시 고도화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재개발은 단순한 상업시설 확장이 아니라, 주거·업무·문화 기능을 동시에 묶는 복합 개발로 진행되고 있다.

역을 바꾸면 도시가 바뀐다

야마노테 라인 재개발의 특징은 ‘역 중심 전략’이다. 역 하나를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 안에 업무시설, 주거, 상업, 문화 공간을 재배치한다. 도쿄 남부의 시나가와, 서부의 시부야, 북부의 다마치 일대가 대표적 사례다. 이 지역들에서는 기존 철도 시설 위나 인접 부지를 활용해 초고층 복합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철도 회사가 단순 운송을 넘어 도시 개발의 핵심 주체로 나서는 일본 특유의 구조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숫자보다 체감이 빠르다. 공사 가림막 뒤에서는 수년 단위의 개발 계획이 조용히 진행되지만, 완공 이후 지역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진다. 출퇴근 사람만 오가던 공간이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고, 낮과 밤의 유동 인구 차이도 줄어든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컴팩트 시티’ 개념이 도쿄식으로 구현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재개발이 인구 감소 시대를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된 사회다. 무작정 면적을 확장하기보다, 기존 도심의 밀도를 높이고 기능을 재배치해 도시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야마노테 라인은 그 실험의 무대다.

재개발은 성장인가, 생존 전략인가

도쿄의 재개발 러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도쿄는 여전히 금융·기술·문화 허브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려 한다. 외국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낡은 도심 이미지를 벗고, 국제 기준에 맞는 업무·주거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다.

다만 모든 변화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재개발로 인한 임대료 상승, 소규모 상점과 오래된 주거지의 밀려남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도쿄 내부에서도 ‘도시가 너무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식 도시 재생이 과연 생활의 질까지 함께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 중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야마노테 라인을 둘러싼 재개발이 단순한 건설 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인구 구조 변화, 산업 전환, 글로벌 경쟁이라는 복합적인 압력 속에서 선택된 전략이다. 도쿄는 지금, 이미 알고 있던 도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을 완전히 다시 짜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일본뿐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다른 대도시들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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