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를 흔들어댔던 촛불시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음산한 기운마저 돈다. 요즘 우리나라 분위기가 그렇다. 몇 달이 넘게 국가정보원 사건으로 흉흉하다. 급기야 국가정보원의 정치ㆍ선거 개입 사건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일선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시국선언은 지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대학 교수들로까지 번지는 추세다. 여기에 언론단체와 종교ㆍ시민단체까지 가세하기 시작했으며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은 국정원 수사 은폐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28일에는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주요 대도시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앞으로 시국 선언을 준비 중인 대학생이나 교수, 시민단체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쪽에서는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또 야당이 국정원 사건을 장외투쟁으로 몰아가려고 부추긴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사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잇따르는 시국선언의 요체는 국정원의 정치ㆍ선거 개입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국기문란 행위라는 것이다. 또 경찰 수뇌부가 이런 사건의 수사를 축소ㆍ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 관련자를 처벌하고 국정원을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요구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 의원조차도 '국정원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드러난다면 국정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정원의 정치ㆍ선거 개입 의혹은 검찰과 경찰 수사에서 거의 사실로 드러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야도 이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검찰은 남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성역없이 밝히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미진한 부분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면 된다. 그런 후에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고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가장 첨예한 문제인 NLL과 관련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도 가급적 조속히 여야 합의하에 공개가 되어 국민들의 의구심을 씻어주도록 할 것이며, 이와 함께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여든야든 불문하고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할 것이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 뒀다가 어디다 써먹을 것인가.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간 힘겨루기 와중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록이 불쑥 공개되면서 진영논리로 자의적 해석을 해대더니 이제는 삿대질까지 벌이고 있다. 나아가 새누리당 지도부가 작년 대선 때 이미 비밀문서인 남북 정상회담 발언록을 입수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와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식의 정치공방으로는 문제를 풀수가 없다. 오히려 꼬이게만 할 뿐이다. 정치권은 이제 사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을 십분의 일이라도 감안한다면 국정원의 정치ㆍ선거 개입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져야 하며 더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국선언과 촛불 시위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경제지수는 많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2008년같은 촛불시위의 혼란이 재연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일부 세력들이 있을지라도, 결코 나라가 흔들리는 혼란이 다시금 재발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국민과 정치인 모두가 혼연일체 되는 가운데에서 지혜를 모으고 명철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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