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현재 진행형 징계에도 또다시 도핑
러시아 현지 반응
발리예바 개인전 출전 여부는?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출전 중인 러시아 피겨 선수 발리예바의 도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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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발리예바 선수는 지난 7일 피겨 단체전 여자 싱글 프리 경기에서 남자 선수의 전유물로 여거지던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 성공하며,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서 쿼드러플 점프에 성공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11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정례 브리핑에서 "발리예바가 이번 대회 전에 진행된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공식 발표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채취한 소변샘플에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을 IOC를 대신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검사를 독립으로 수행하는 국제검사기구인(ITA)가 이달 8일에야 확인했다.

이는 발리예바가 이끌던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7일 이번 올림픽 피겨  단체전에서 우승한 다음 날 이었다. IOC는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후 8일 진행 예정이던 피겨 단체전의 공식 시상식을 '법적 문제' 때문에 연기한다고 9일 발표했다. 

코메르산트와 RBC 등 러시아 매체는 발리예바의 도핑 샘플에서 검출된 성분이 트리메타지딘이라고 전했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에 쓰이는 약으로 운동선수의 신체적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인정돼 지난 2014년 1월부터 도핑 금지 약물로 지정된 바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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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양성 반응 결가 확인 후 8일 발리예바에게 잠정 출전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발리예바는 9일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RUSADA는 회의를 거쳐 이에 따라 RUSADA 측이 발리예바에게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었지만, 다음 날 발리예바측의 항소를 받아들여 징계를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IOC와 국제빙상연맹이 러시아의 징계 철회에 반대하며 스포츠중재재판소에 항소해 현재 긴급청문회 절차가 진행 중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경기는 오는 15일 시작되기에, CAS의 결정에 따라 발리예바의 출전 여부도 가려질 전망이다. 

다만, 러시아 빙상연맹은 발리예바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개인전 출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 (ROC)는 지금까지도 발리예바가 올림픽 무대에 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ROC는 "2022년 1월 치러진 유로피언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과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수집된 발리예바의 샘플에선 음성 반응이 나왔다"면서 "러시아 선수단 구성원의 권리와 이해를 호하고 정직하게 따낸 올림픽 금메달을 지키기 위해 포괄적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OC가 이날 성명에서 '정직하게 따낸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발리예바의 도핑 위반논란에도 피겨 단체전 금메달이취소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도핑 의혹의 역사 

러시아의 도핑 문제는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도핑을 돕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사진= pixabay]

대대적인 파문은 지난 2014년 12월 독일 공영 방송인 APD에서 방영한 '비밀 도핑 보고서-러시아는 어떻게 우승자를 배출했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부터다.

다큐멘터리에는 '러시아 올림픽 대표단의 99%가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으며, 배후로 러시아의 비도핑기구(RUSADA)산하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이었던 그래고리 로드첸코프 박사를 지목됐다.

이후 로드첸코프 박사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투여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런던 여름올림픽, 모스크바세계육상선수권대회, 소치 겨울올림픽 등 국제 대회 전반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했으며 러시아 체육부가 이를 감독했다는 내용이 세상에 밝혀지게 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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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선 깨끗한 선수의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 놓은 후, 이를 바꿔치기 하는 방식으로 도핑을 은폐했다.

선수들의 경기 종료 후 약물로 오염된 소변 샘플은 RUSADA 연구소에서 보관됐으며,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연구소에 들어가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연구원들로부터 오염된 샘플을 받고, 대신 깨끗한 샘플을 바꿔치기 전달했다.

러시아는 또한 여러 금지 약물과 술을 섞은 칵테일을 개발해 선수들이 나눠 마시도록 하였는데, 칵테일의 암호명은 '귀부인(Duchess)'이었다.

해당 파문으로 2017년 러시아는 회원 자격을 정지당하고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는 아예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선수들은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자격으로 출전하였고, 러시아 국기와 러시아 국가를 사용하지 못했다. IOC는 평창 올림픽 이후 러시아에 내린 자격정지 처분을 해제했지만, 2019년 1월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결과가 또 조작됐다는 것이 발견돼며 오는 12월까지 국가 자격 출전 정지 징계를 받게 되었다. 

[사진= 러시아 국기 대신 ROC 엠블럼, 연합뉴스]
[사진= 러시아 국기 대신 ROC 엠블럼,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에는 15세 소녀의 몸에서 도핑 금지 약물이 발견되며,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이어오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숱한 도핑 스캔들로 징계가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도, 도핑 사실이 드러난 선수를 계속 올림픽에 출전시키려 압박하는 러시아의 모습에서 스포츠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미성년자인 발리예바가 금지약물을 복용하도록 상황을 조성한 주변의 코치, 의사, 관계자들에 대한 비난도 일고있다.

1984년 사라예보, 1988캘거리 올림픽에서 2회 연속 피겨 여자 싱글을 제패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 선수는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트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에 책임 있는 어른들은 모두 영원히 스포츠에서 추방당해야 한다"며 "어른들이 알고도 발리예바에게 이런 일을 했다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주위의 어른들이 문제이고 발리예바는 '희생양'일 뿐이라는 동정 여론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만 발리예바를 징계해야 한다'는 원칙론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일간지인 USA투데이도 도핑 사실로 드러난 선수를 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준다면 '올림픽은 영원히 더럽혀질 것'이라며 강력하게 처벌을 촉구했다. 

러시아 도핑의혹 피해자, 메달 뺏긴 김연아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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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금지약물 처방 의혹은 국내에서도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피겨 팬들이라면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소트니코바는 소치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던 김연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만 17세의 나이에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 번도 메달을 딴 적 없는 그녀가 '피겨여왕'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의 금메달은 부당했다. 여자 싱글에서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지만 219.11점에 그친 김연아와 달리 연기 중 회전수 부족, 착지 실수 등의 감점 요소가 많았음에도 소트니코바는 김연아보다 무려 5.48점이나 앞선 224.59점을 받았다.

여러 기술요소에서 감점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들은 어떠한 감점도 주지 않았으며, 예술점수 역시 직전 대회에 비해 10점 이상 폭등하는 등 러시아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김연아를 뛰어넘는 놀라운 점수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개최국인 러시아에 금매달을 빼앗겼다며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던 경기였다.

소트니코바를 둘러싼 의혹 중엔 도핑 의혹도 있었다. 그녀의 도핑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결국 증거 부족으로 IOC 징계 조사위원회에서 무혐의 처분을받으며,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발리예바 도핑의혹, 러시아 현지 반응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한편, IOC가 이번 사태를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세계 각국 스포츠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발리예바의 도핑의혹을 처음 보도한 기자들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올림픽 관련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인사이드더게임즈의 덩컨 매카이와 마이클 파비트 기자가 지난 9일 발리예바가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개막 전에 진행한 도핑 검사에서 문제를 보였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들의 보도가 거짓말이라며 온라인 등을 통해 분노에 찬 메시지를 쏟아냈으며, 특히 매카이 기자는 살해 위협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민들 뿐 아니라 주요 인사들도 발리예바의 결백을 믿는다며 그녀의 도핑 의혹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을 비난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스베틀라나 주로바 러시아 하원의원은 러시아 현지 스포츠매체에 "같은 방식으로 치료를 받았더라도 그들의 선수들에게는 정상이고 우리 선수들에게는 도핑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하원의원인 드마트리 스비셰프도 "유감스럽게도 일부 언론인들은 술집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어린아이에게 하고 있다"며 "카말리아는 너무 어리며 아이들에게 그런 질문을 해서는안된다. 우리는 그가 금지된 것을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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