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대기자 4만 명 시대, 해답은 이종이식에 있을까

한계는 있지만 의료계와 과학계는 장기기증의 대안으로 돼지 장기 이식(이종장기이식)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한계는 있지만 의료계와 과학계는 장기기증의 대안으로 돼지 장기 이식(이종장기이식)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월드투데이 박문길 기자] 전 세계적으로 장기 이식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장기 이식 대기자는 4만 명을 넘어섰으며, 매일 평균 2~3명의 환자가 장기 제공자를 찾지 못해 숨을 거두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장기 기증 문화와 사회적 제도적 한계는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의료계와 과학계는 대안으로 돼지 장기 이식(이종장기이식)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 돼지 장기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

의료계가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돼지는 인간과 장기 크기 및 생리적 기능이 유사한 데다 번식 능력이 뛰어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이미 의료현장에서는 돼지 조직이 심장 판막, 피부 이식, 인슐린 연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며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그대로 이식할 경우 강한 면역 거부 반응이 발생한다. 돼지 세포의 특정 유전자가 인간의 면역체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Cas9) 을 활용해 거부 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인간 면역에 적합한 유전자를 삽입한 ‘이식 전용 돼지’를 개발하고 있다.

2022년과 2023년,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진은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심장을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고, 환자는 2개월 이상 생존하였다. 이어진 신장 이식 실험에서도 돼지 신장이 일정 기간 정상 기능을 수행하며 임상적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돼지 장기 이식이 더 이상 실험적 연구에 머물지 않고 임상 치료 옵션으로 전환되는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장기간 생존과 안정성 확보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의료계는 '기술적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윤리·안전성 논란도 지속

이종장기이식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과제 외에 윤리·제도적 논쟁도 해결해야 한다. 동물 복지 문제: 장기 생산을 위한 사육·유전자 조작의 정당성, 바이러스 위험성: 돼지 내 잡종 바이러스(PERV)가 인체 감염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 사회적 합의: 생명 연장 목적이 모든 윤리 문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등이다.

특히 새로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은 전문가들이 강하게 경계하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국제 의료기구와 각국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유, 장기 추적 감시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는 인공 장기, 줄기세포 치료, 재생의학 기술 등도 연구하고 있으나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돼지 장기 이식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내 일부 장기(신장·심장·췌장 등)의 임상 상용화 가능성을 전망한다.

장기를 구하지 못해 생명이 꺼져가는 시대가 끝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기술의 발전이 장기 이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생명을 지키는 기준이 ‘운’이 아니라 ‘선택’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 장기 이식이 인간 생명의 시간을 연장할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전 세계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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