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인조반정 뒷면에 숨겨진 미스테리

[월드투데이 김시언 기자]

14일 광해군이 재조명을 받는 가운 데 이조5백년사에 신하가 왕을 내쫓은 두 번째 사건인 인조반정속에 숨겨진 광해군의 아련한 슬픔이 주목을 받고 있다.

1623년 3월 12일 발생한 인조반정은 충과 효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하지만 충.효의 대상이었던 왕을 신하들이, 그것도 두 번이나 내쫓는 일이 발생한다.

▲ 영화속의 광해군
중종반정에 이어 인조반정이 그것! 특히 중종반정과 달리 인조는 직접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의 조카였던 인조. 그는 왜 삼촌을 향해 반정의 칼을 든 것인가 아직도 미스테리다.

한양에 돌던 소문대로 집터에 왕기가 흐르고 왕이 될 운명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록의 기록대로 폭군 광해군을 몰아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였을까?

인조를 비롯해 반정을 일으킨 세력들은 누구였고, 이유가 무엇인지.. 실체적인 진실은 아직도 베일 속에 쌓여 있다.

인조반정 세력은 광해군을 폐위시키면서 36가지의 죄목을 들었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명에 대한 배신과 폐모살제, 즉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형제를 죽였다는 것! 충과 효가 무너지는 패륜을 막기 위해 칼을 들었다던 인조반정의 당위론이었다.

그러나 실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보인다. 정작 인조 자신도 능양군 시절 인목대비를 폐하라는 정청에 참여한 것이다. 광해군을 폐위시킨 명분에서 인조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여기엔 어떤 진실이 숨겨 있다.

▲ 인조반정의 모습
광해군의 방심은 상궁 김개시 때문. 반정이 일어나던 당일, 상소가 하나 올라온다. 이귀와 김자점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고변이었다. 그동안 역모라면 친국까지 하며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던 광해군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그는 왜 반정 계획을 알리는 고변을 무시한 이유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기록에 따르면 광해군은 한 여인의 말을 믿고 역모의 의심을 거두었다고 한다. 여인의 정체는 상궁 김개시! 광해군은 정말 김개시 때문에 반정의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상궁 김개시와 광해군 사이에는 대체 어떤 말 못할 사연이 광해군과 이조반정에 얽힌 미스테리다.

한편 역사의 실록을 보면 반정군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궁궐을 장악했다.

단 하룻밤 만에 광해군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인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반정군 규모는 1300여 명 남짓. 그것도 절반 가량이 길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 모은 오합지졸들이었다.

하지만 광해군에겐 도성을 지키고 궁궐을 호위하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조선의 정예병들을 대상으로 반정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풀리지 않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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