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을 응대하는 부서에서 일하며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온라인커뮤티니

대법원은 A씨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판단이다.

1995년 국회 공무원으로 임용된 A씨는 2012년부터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이나 민원을 담당하는 청원 담당 계장으로 일했다. 국회에 접수되는 청원, 진정, 민원 등은 2012년 무렵 연 6000건에 달했고, 이를 소관 부서에 전달하거나 상담하는 업무는 상당히 강도가 높았다.

특히 2013년부터 자살예방을 위한 전화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 개소 및 운영 준비를 맡아 업무는 더 늘었다. 예정된 상담센터 개소 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월 50시간 이상 추가 근무는 물론 휴일근무도 했다.

A씨는 그 해 1월부터 국회에서 처음 도입한 자살 예방 상담소인 ‘생명사다리 상담센터’ 개소 업무를 맡았다. 평소보다 업무량이 는 탓에 A씨는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한 달 사이에 체중이 8㎏이나 빠지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던 우울증세도 심해졌다. 5일간 병가를 내고 휴식을 취했던 A씨는 병가를 마친 출근 날 아침에 자택 베란다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유족은 A씨의 자살 원인이 과도한 업무에서 온 스트레스 때문이어서 공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 보상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공무와 무관한 사적인 행위이고,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다” 라며 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1심은 A씨의 사망이 공무원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그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하고 악화돼 자살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A씨의 업무가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과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A씨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안 증세에 시달렸고, 우울증 병력이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비록 과거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나 2012년 12월까지 꾸준히 치료받으며 별다른 문제없이 근무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A씨가 과중한 업무 및 그와 관련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의 우울증이 재발되거나 악화됐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자살을 선택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유가 나타나지 않고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크게 떨어져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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